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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은 흐른다

by 블루밍드림

독일로 간 사람들


“라인강이며 로렐라이 언덕이며.. 무척이나 가보고 싶었던 유럽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눈물부터 주르륵 흘러내렸다.”


파독(派獨) 간호사 (출처: 노컷뉴스)


이역만리 먼 나라까지 돈 벌러 길을 떠나야 했던 어느 파독(派獨) 간호사의 회고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엄마 나를 낳지 않아 아마도 꽃처럼 어여뻤을 그런 시절이었다.


나 자라며, '우리 엄마는 독일로 가지 않아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하였다.


"갔다 올게."


난생처음 나도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라인강과 로렐라이 생각에 내 가슴도 설레었다. 내가 다 자라 취직을 하고 엄마와의 대화가 심드렁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마침내, 별 것 없다 싶었던 로렐라이 언덕을 보았고, 라인강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엄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라인강은 흐른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또다시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 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뤼데스하임 곁을 흐르는 라인강


라인강을 그리 자주 보게 될 줄 몰랐다. 쾰른에 갈 적에도, 하이델베르크에 갈 적에도,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갈 적에도 라인강은 언제나 내 곁으로 흘렀다. 나도 나이가 들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비가 된 그런 시절이었다.


"Ich weiß nicht.." 하이네(Heine)의 '로렐라이' 시는 "나는 잘 모르겠네.."로 시작되었고, 페리선에 올라타 라인강을 건널 때에도, 로렐라이 언덕을 걸어 오를 때에도, 아이들은 그 노랫말과 멜로디를 알지 못했고, 아비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라인강을 바라보는 심정을 알리도 없었다.


'울 엄마도 파독 간호사가 될 걸 그랬어.' 어느 땐가, 라인강 위로 툭하니 혼잣말을 내던졌다. 그리 떠날 바에는.. 그 편이 나았겠다 싶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라인강을 거슬러 오스트리아 땅 티롤 알프스로 향하던 길이었다. 해는 길어가고, 이른 여름은 풀빛으로 영글고, 강은 마을을 휘감아 흘렀다. 하루를 쉬어가야 옳았다. 뤼데스하임(Rüdesheim Am Rhein) 뒷 언덕은 풀빛 잎새 아래 풀빛 포도송이들이 송알송알 커가고 있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이육사의 '청포도' 중에서)


비록 벼슬아치 의복을 걸치진 못했어도 나도 돈 좀 벌 줄 안다던 잘난 사위의 그 시절, 둘만 타는 깡통 곤돌라에 처가식구를 줄줄이 태워 퍼레이드라도 하듯 포도밭을 거슬러 올랐다. 청포 입지 못한 걸 흉으로 보지 않는 더없이 귀한 손님들이었다.


그 시절의 깡통 곤돌라는 빗방울 흩날리는 하늘 밑을 낮게 낮게 날았고, 특히나 내 아이 웃음소리가 깡통을 마구 흔들어댔다.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갔다 올게."


아직도 입신(立身)을 꿈꾸는가.. 그런 꿈이 참 많이 부담스럽던 시절이었다. 독일 출장길에 올랐고, 나 홀로 뤼데스하임을 다시 찾아들었다.


나 홀로 표를 사고, 나 홀로 깡통에 몸을 실어, 푸른 하늘 밑 청포도의 바다가 가슴을 풀어헤쳐 풀빛 꿈을 꾸는 그 언덕에 올랐다. 깡통 속에 숨듯 앉아 내리쬐는 햇볕에 오래간만에 내 가슴도 활짝 열어젖혔다.


초여름 윤슬의 라인강, 그 곁의 청포도 언덕, 시간이 매듭을 이어 나를 여기에 다시 불러 세운 까닭이 무엇일지.. 더 낮게 날기를 바랐다. 어쩌면 아직도 청포 입기를 꿈꾸는 것일지도 몰랐다.


포도밭이 멈춘 언덕에 올라 나를 멈추었다. 별다른 목적 없이 라인강을 바라보았고, 강은 말없이 흘렀다.


"포도밭을 걷는다면, 나와 함께 걸을래?"

"저 강을 건넌다면, 나도 뭔가 바뀔 수 있을까?"


그 순간, 우리 아이들은 더 커서도 아비가 라인강변 청포도 밭을 다시 찾은 어렴풋한 까닭을 굳이 알려하지 않기를 바랐다.


라인강의 파수꾼


니더발트 기념비(Niederwalddenkmal)와 게르마니아 여신


청포도밭 언덕 위엔 '라인강의 파수꾼'(Die Wacht am Rhein) 게르마니아 여신이 옛 그대로 서 있었다. 바뀐 것은 그 밑에 선 사람들이었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 위인전을 읽었던 소년은 정작 비스마르크의 보불전쟁 전승을 기리는 니더발트 기념비를 바라보며 옛처럼 무감각하였다.


그저 그렇던 지방 후작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총리가 된 후 가짜뉴스를 퍼뜨려 독일 통일에 반대하던 프랑스를 도발함으로써 보불전쟁(1870~1871)을 일으켜 승리하였다. 1871년 독일은 통일되었고, 그는 독일제국의 총리가 되었다.


엄마는 왜 내게 위인전을 읽으라 했는지.. 엄마 보다 오래 살고 있는 고지식한 아들은 긴 세월 "공부 잘하는 게 제일이야."라는 잔소리가 아이들을 이끄는 제대로 된 길인 줄만 알았다.


저 넓은 포도밭 한 귀퉁이를 베어내어 내게 준다면, 나도 바뀔 수 있을까.. 포도알을 훑어 달달해진 바람에 괜한 백일몽을 꾸었다. 비탈진 청포도밭 사잇길을 한참을 걸었다. 뉘 부르는 소리가 있는 듯 괜스레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나를 돌아보았다


Cafe Stadt Frankfurt


뤼데스하임의 드로셀가쎄(철새골목)를 따라 걸었다. '프랑크푸르트시'(Stadt Frankfurt)라는 밋밋한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포도밭을 그새 추억하며 그 시절의 어른들은 리슬링 와인(Riesling Wine)을 얼근하도록 마셔댔다.


식당에 꽉 들어찬 그 나라 사람들은 술 마시며 떠들다가도 경쾌한 슐라거(Schlager, 독일 트로트)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불렀고, "Ein prosit! Ein prosit! Der Gemütlichkeit!" (건배! 건배! 즐거운 시간을 위하여!) 연신 건배를 외쳐댔다. 술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비틀대고, 비틀대면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던 아비도 사위도 눈치 없이 소리를 높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나 홀로 그 자리에 다시 찾아들었다. 나 홀로 리슬링 와인을 마시며 변함없던 라인강과 청포도밭을 그새 추억하였다.


두어 잔에 취기가 올랐다. '술도 이젠 예전만 못하네.' 나는 여전히 드로셀가쎄 화려한 골목 모퉁이에 서 있었다. 잘 나가던 시절과 그렇지 못한 시절을 똑같은 곳에 서 있었다. 이곳을 왜 다시 찾은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에필로그


퓰리처상 수상 시인 프란츠 라이트(Franz Wright)의 애매모호한 시를 위인전 읽듯 하던 날이 있었다.


Proof
of Your existence? This is nothing
but.


내 존재의 증명?


그 골목에서 예전의 나였던 어떤 이를 보았다.

그이도 나를 알아보는지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말해 줄게. 어떻게든 버텨! 누군가, 널 찾아내고 말 테니.."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내게 해 주는 말인지,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내게 하고픈 말인지.. 달달한 와인에 취해 알쏭달쏭하기만 하였다.


북적대는 골목을 벗어난 곳에서.. 청포도 익어가는 향기를 실어 라인강은 흐르고 있었다. 예전에 흘렀듯이 앞으로도 그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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