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탈리아 파브리치오 다리 위. 한 남자는 버려진 꽁초를 다시 주워 불을 붙인다. 깊은 호흡 한 번에 뿜어져 나오는 그의 속내는 티끌 없이 하얗다. 그는 속으로 ‘한번 맑게 살아나볼걸….’ 하는 생각을 하며 하늘에 깊은 한숨을 뿜어낸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호흡을 가다듬고 멀리 떠나가는 해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네가 비추는 그 매일이 참 고역이었어. 잘 있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의 뒤에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뒤를 돌아보니 키가 작은 한 할머니가 그를 보고 양손에 만두를 쥔 듯한 포즈를 하며 화통을 삶아 먹은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는 소리에 놀라 절뚝이던 다리를 휘청거리다, 아주 작은 삶의 의지가 있었는지 다리 안쪽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아진 그의 머리. 그대로 기절하는 듯싶었으나, 할머니의 끊임없는 소음에 편히 기절할 수도 없었다. 머리 위쪽이 따끈하다. 아마도 피가 다시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손을 움직일 힘이 없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린 탓인지 움직일 수가 없다. 몇십 분이 지났지만 끊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지는 할머니의 괴성.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달아오르며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점점 잠겨지는 눈을 억지로 뜨며 할머니를 보고 생각한다.’ 그래, 저건 분명 심한 욕일 거야. 분명해.’ 그 짧은 생각을 끝으로 그는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잠시뒤 눈앞이 번쩍거리며 불꽃이 팡팡 터진다. 뒤통수가 화끈거린다. 아픈 감정은 다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다시 뒤통수에 벌침을 맞은 듯 따갑고 화끈거리다가 이내 둔탁한 무기로 맞은 듯 고통이 밀려온다. 다리에 기대어 앉아있던 청년의 뒤통수를 할머니가 가격했다. 청년은 두 번째에 정신이 들었고 그녀를 향해 소리친다. “할머니! 아파요! 그만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곤 양 손바닥을 맞대며 싹싹 빌기 시작한다. 심지어 무릎까지 꿇는다. 몸에서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다. 그만큼 청년은 아직 삶에 맞닿아 있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청년을 향해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는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따라가지 않으면 방금 느낀 그 고통을 다시 맛봐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잠식하며 지레 겁을 먹었다. 꿇고 있던 무릎을 펴며 일어서려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피가 통하지 않았는지, 혀끝에 남아있던 침을 손가락에 묻히며 코에 가져다 댄다. 그런 행위를 몇 번 반복하더니 신기하게도 금세 괜찮아지며, 팔짱을 끼고 있던 할머니를 향해 걸어간다. 할머니는 청년이 따라오는 것을 보더니 미련 없다는 듯 돌아섰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간다. 청년은 여기저기 온몸에 통증을 느끼며 할머니를 놓칠까 봐 급하게 따라간다.
이따금 찬 바람이 불어오는 파브리치오 다리를 건너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세 시대의 건물 형태가 아직도 남아있는 거리를 지나고 아치 형태의 구조를 가진 건물 사이를 걸어가며 더욱 할머니가 의심된다. 혹시라도 나쁜 일에 엮일까,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낀 것처럼 거슬린다. 그러다 할머니라는 사람이 궁금해지며 나이를 예상해 본다. 고희 정도일까. 한국에서나 입을 법한 꽃무늬 옷. 다채로운 색들이 한데 섞여 나풀거리는 원피스와 잘 어울린다. 젊은 시절에는 좀 날렸을 것 같은 뒷모습에 혹하는 남자들도 많았을 거라. 한참을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할머니의 등에 그대로 부딪힌다. 그녀가 멈춘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 계속 걷다가 부딪혔다. 이윽고 할머니의 손바닥이 종만의 뒤통수를 후리며 그는 슬프지도 않은 눈물을 흘려낸다. 할머니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칠이 잔뜩 벗겨진 문고리를 잡고 돌리며 현관인 듯 한 문을 연다. 빨간색 문이 열리면서 아주 허름하지만, 잘 정돈된 음식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동안 다녀간 사람이 없었는지 군데군데 먼지가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식탁과 의자는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투박하지만 음식만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식기류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던 종만의 코를 무언가 “톡, 톡” 건드린다. 먼지도 아닌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어 본다. 코를 타고 들어간 그 입자들이 뇌와 폐로 전달되며 신경 물질을 내보낸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신료와 오일이 버무려진 냄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매주 외식을 했었다.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그런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곳을 자주 가기 전, 처음으로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섰던 그때. 황홀한 냄새가 났었다. 말 그대로 황홀했다. 소스가 입에서 춤을 추고, 씹히는 음식들이 한데 섞여 디스코를 추는 그런 기쁨. 그런 기쁨이 다시금 느껴진다. 이곳, 이탈리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타월을 잘 만드는 나라이겠거니’라는 생각뿐이었다.
죽음을 문전에 두고 있던 사람. 그런 그가 황홀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지만, 이곳에 들어서고 그는 삶의 화려하고도 찬란함을 느꼈다. 냄새에 정신이 팔려서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있다가, 앞에서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걸린다. 그녀는 종만을 자리로 안내한다. 그리곤 그의 앞에 접시와 식기를 가지런히 놓는다. 분명 눈앞엔 아무것도 없다. 냄새만으로도 침이 목구멍을 따라 흘러내린다. “꼴깍” 그 소리는 조용한 공간을 타고 흐른다. 잠시 후 하얀 김이 모락거리는 접시 속, 그것이 보인다. 파스타. 삶을 포기하고 나서 처음 맞닥뜨린 이것. 도대체 끼니를 언제 때웠는지 알지도 못했다. 양손이 부들거리며 당장 식기를 들어 올릴 기세다. 하지만 고결한 음식이 그의 정신을 깨웠을까. 할머니에게 조용히 목례하고 양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대상도, 고마움도, 무얼 위해 눈을 감는지도 몰랐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기도를 마치고 파스타를 한입 가득 먹는다. ‘감칠맛. 그래 감칠맛이다.’ 종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그 단어와 함께 자신도 모르는 새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한없이 흘러내린다. 식탁에 떨어지는 뜨거운 물들이 방울지며 번진다. 이유는 모르지만, 머릿속 한쪽에 감칠맛이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눈앞에 필름이 펼쳐진 듯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이 지금과 겹친다. 지금 자신이 진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칠맛 도는 삶. 종만의 마음속에 작은 의지가 싹튼다. 그리고 할머니는 반대편 식탁에서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이따금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다.
그릇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파스타가 어느새 텅 비었다. 뜨겁던 파스타 면은 종만의 식도를 타고 흐르며 위장으로 넘어간다. 따끈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그의 장기는 운동을 시작한다. 후식으로 할머니가 내어준 콜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과도하게 내려간 탄산에 목구멍이 따가운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신음을 낸다. ”끄윽” 자신도 모르게 실례를 범한 그는 할머니를 한번 쳐다보지만, 할머니는 콧방귀만 뀔 뿐이다. 이윽고 종만은 트림 한 번에 입이 풀렸는지 말하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이탈리아 사람. 종만은 한국 사람.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할머니도 이따금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곳은 국경을 초월한 대담의 현장이다.
“할머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진짜 말도 마세요.”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몇 번의 뺨을 더 맞긴 했지만, 군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부모를 잃은 그를 건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마칠 수 있었다. 제대 후 삶을 포기하고 부모가 남긴 재산을 탕진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쾌락과 향락에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지옥에 빠진 기분이었다. 결국 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한 그는 더 이상의 삶은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술이 필요했다. 그는 술이 없이는 살 수가 없었고 점점 알코올 중독이 되어 갔다. 돈이 떨어지자, 부모님의 유품을 탈탈 털어내어 술값을 찾는다. 한참 유품을 뒤지다 나온 어머니의 편지.
외삼촌과의 편지 내용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죽고 싶었지만 사라지기 싫었던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로 도망치고 싶었다. 남은 글을 다 읽기도 전에 그는 편지를 한 손에 꾸깃꾸깃하게 들고는 도피할 자금을 찾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꾸깃하게 접힌 편지에는 휘갈긴 글씨체로 짤막한 내용이 담겨있다. ‘누나, 내가 드디어 로마 쪽에 포도주 공장을 하나 마련했어. 꼭 놀러 와.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여줄게 누나.’ 마지막 남은 현금으로 종만은 이탈리아행 티켓을 끊었다. 돌아오는 표는 없다. 그는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