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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만이와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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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현

한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방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한데 뒤엉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친다. “Smettetela, sciocchi! (그만들 해 바보들아!) 그 외침이 파스타 팬에 한번, 조리도구에 한번, 잔뜩 쌓인 설거지에 한 번 튕기며 그들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안토니오는 요리를 한창 배우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자자하게 들었다. “너의 요리는 정말 온몸의 감각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니까! 최고야!” 그런 칭찬은 그를 점점 기고만장하게 했고 메인 요리장인 그에게 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는 정정했던 가브리엘라가 기고만장해진 안토니오에게 지적하자 자존심이 상한 안토니오는 남부 사람의 특성을 깨고 어머니께 대들었다. 몇 마디 항변하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알싸해진 주방. 가브리엘라는 정적을 깨고 팬을 한 손에 집더니 그대로 안토니오의 후두부를 향해 휘갈겼다. 그는 제대로 후두부를 맞으며 뜨겁게 달궈진 팬의 온도만큼 진한 눈물을 흘렸다. 사실 안토니오는 자신이 왜 맞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칭송하는 분위기에 취해,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가브리엘라가 가르쳐 준 신념. 요리엔 정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정성과 삶이 이어지는 순간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 정성이 담기지 않는 것은 쓰레기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 “Mi dispiace(죄송합니다.)” 그때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강하게 잡고 있던 종만의 멱살을 놓으며 그에게 이야기한다. “Mi dispiace” 살기 위해 불가항력으로 안토니오의 멱살을 잡았던 종만도 이야기한다. “죄송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진심은 반드시 통하는 법이었다.



단골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이곳 베네베네에 단골이자 은퇴한 외교부 통역관이었다. 삶이 우연하게도 아주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것은 이럴 때 많이 느끼곤 한다. 그는 가브리엘라와 아주 친한 사이였으며 이따금 그녀를 위한 한송이 장미도 선물할 줄 아는 로맨티시스트였다. 가끔 한국 출장을 다녀오면 그는 꼭 가게에 들러서 가브리엘라에게 그간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곤 해다. 알레한드로가 한국을 알고 친숙하게 느낀 까닭은 그의 할아버지가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그때 체험한 동양의 문화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책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종만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동안 들었던 생김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외교부 생활을 마치고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접한 그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


사람을 한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넓은 세상을 다니며 배운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런 그가 자주 다니는 곳에 갑자기 등장한 동양 청년. 호탕한 성격이며, 키는 작지만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닌 그를 보며 단번에 한국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들을 거로 생각하지 못한 인사에 종만은 적잖이 당황하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정서적 교감. 종만은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고향을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이 외국인의 시선에서 듣는 자기 고향 이야기는 종만에게 최고의 낙이었다. 그렇게 종만과 친해진 알레한드로. 하루는 종만이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따라나선다. 그는 통역을 해주며 더욱 값싸고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종만에게 이탈리아 이름을 선물한다. 자신과 같은 이름 “Alessandro” 라틴어로 수호자를 뜻하는 말. 앞으로 요리를 통해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종만은 마음 깊이 올라오는 감동의 물결을 진하게 느꼈다.



어느 정도 진정된 안토니오와 종만. 그리고 가운데 서 있는 알레한드로. 그는 둘에게 점심시간 주문을 화합하여 빨리 해결하고 잠시 걸으며 산책하자고 제안한다. 불길이 가라앉은 이곳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티격태격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며 생활하니 호흡이 잘 맞아 들어갔다. 그렇게 무사히 점심 주문을 해결하고 기다려 준 손님들에게 안토니오의 서비스 수프가 추가되었다. 잠시나마 무거웠던 베네베네의 분위기가 축제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요리는 사람을 춤추게 한다. 흥미롭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알레한드로는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구 도심길을 벗어나 한적한 숲이 우거진 공원길을 걷는다. 양쪽으로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고 흙길을 걷는다. 향긋한 신록의 내음들이 콧속으로 들어오며 즐거움을 더한다. 이탈리아 남부 사내들의 우정이 걸음마다 몸과 마음속에 깊게 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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