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사]
최근 사망한 다리미 씨의 유력한 피의자로 어젯밤 가위 씨가 체포되었다.
가위 씨는 직장 동료로서 평소 다리미 씨와 친하게 지냈으며,
장례에서는 추모객들을 대표해서 애도사를 읽기도 해 그의 체포 소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선의 절단면이 가위 씨의 칼날과 99.8%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소견서를 통해 수사당국은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부엌 서랍에 은신해 있던 가위 씨는 순순히 칼날을 벌려 수갑을 차고 체포에 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리미 씨의 유족 분무기 씨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믿을 수가 없다."며 눈물을 분사했다.
[사건번호 20□□-가-04] 피의자 가위 신문 조서
1. 범행동기
[문] 다리미 씨와 어떤 관계인가?
[답] 한 직장에서 일합니다.
[문] 친했나.
[답] 네... 친하게 지냈습니다.
[문] 얼마나.
[답] 자주 연락하고 술도 같이 마시고... 이야기도 자주 했습니다.
[문] 어떤 이야기.
[답] Iron이라는 말은 좋아하고, 다리미(美)라는 말은 싫어했습니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씩씩대며 증기를 내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림기(機)'라고 불러 달라는 말도 했습니다.
[문] 그래서 자네는 뭘 했지?
[답] 제가 늘 하던 걸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끊음이 아니고... 해방이었습니다.
2. 피의자 심리 상태 소견
정체성 혼란 (피해자와 유사한 정체성 혼란 증세)
가. 서로 비슷한 오른날과 왼날이 묶여 평생 살지만 정작 본인은 자르고, 가르고, 경계를 만들고 모서리를 만드는 행위에 회의를 느낌
나. 피의자 가위 씨는 박사 학위를 받고 평소 사무실에서 서류를 다루었지만 최근 들어 부엌으로 투입돼 삼겹살과 김치를 자르는 근무에 회의를 느꼈음. (고춧가루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
사무용품인지 주방용품인지 불안 증세 있음.
다. 다리미 씨와 비슷한 문제를 서로 자주 공유한 정황 포착.
3. 범행 정당성 주장
"제가 누구보다도 다리미 씨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리미 씨가 차마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고민을 제가 들어주고 이해해 줬습니다. 그가 원한 건 오로지 다시 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갈수록 그의 전선은 더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가 저에게 해방을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전선을 자른 게 아니고 그를 묶고 있던 꼬리표를 자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