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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Dec 19. 2017

[채식 8주차] 치킨 먹는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로 8주 살기 -식사편-


치킨 먹는 채식주의자


치킨 먹는 채식주의자...?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1주차 일기를 쓸 때만 해도 오늘은 반팔인가 긴팔인가 고민했는데, 벌써 니트에 패딩을 껴 입어도 추운 계절이 되었다.


채식 생활도 8주차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가끔 야식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점심으로 초밥도 먹고, 식후 디저트로 얼그레이 쉬폰 케익을 사 먹는다.


나는 스스로를 '치킨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칭한다. 채식주의자라는 타이틀이 딱히 필요한 것도, 가진다고 해서 특별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정의하는 이유는 식물성 식단을 지지하는 가치에 공감하며, 실생활에서도 일부분이나마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완전 채식 식단을 선택하고, 친구랑 같이 먹을 때도 가능하면 육고기는 피하려 하고, 간식을 사 먹을 때마다 성분표를 확인한다.


내가 지향하는 건 '할 수 있는 만큼'의 채식이다. 먹고 싶은데 억지로 꾸역꾸역 참으면 분명 지속하지 못할 거란 걸 안다. 적어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뿐만 아니라 매번 육수나 위에 올라가는 토핑을 하나하나 체크하느라 강박을 느끼는 것 또한 채식을 그만두게 만드는 데에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채식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어려운 선택임에도 억지로 해내려고 하는 건 지속성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끼만 채식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채식주의자의 생태계에 기여를 하게 된다. 작게는 채식 식당의 수요를 늘릴 수 있고, 크게는 환경 오염이나 공장식 축산의 비율을 낮추게 될 거고.


물론 그 끼니 수가 점점 늘어난다면 더 좋겠지만, 시작은 작게 해도 되지 않겠나. 할 수 있는 만큼만.




채식주의자의 외식

시금치 카레... 비주얼은 괴상하지만 맛은 괜찮았어요...

(1: 노바키친  2,3: 더 피커  4:마요식당)

혼자 먹거나 채식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과 식사를 할 때에는 주로 채식 식당에 간다. 하지만 채식 식당도 그 수가 많지 않아 마땅치 않을 때는, 일반 식당에서 그나마 채식에 가까운 메뉴를 주문한다. 마지막 사진은 시금치 카레인데, 계란과 소시지를 빼고 싹싹 긁어 먹었다.


채가쌈밥

일반 식당이라 하면 한식집을 종종 간다. 자주는 안 가서 가던 곳만 가는데, 추천하고 싶은 곳은 서울대입구역 채가쌈밥. 


따로 비건 메뉴가 있는 건 아니다. 주문 전에 말씀 드리면 챙겨주신다기에 한 번 가봤다가 단골이 되어버렸다.

푸-짐. 이 한 상이 7,000원이라니.

원래는 강된장 위에 우렁이 올라가고, 젓갈이나 멸치 등 해산물 반찬도 함께 나오는데 미리 말씀 드렸더니 다 제외하고 내주셨다. 밥도 흰 쌀밥 반, 현미밥 반.


쌈채소도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한 번밖에 못 먹고 남긴 것도 있었다. 숯불 돼지고기나 낚지 볶음같은 일반 메뉴도 있으니 친구들과 함께 가기에도 좋을 것 같다.


출처: 서브웨이 공식 홈페이지

서브웨이

혼자서 쌈밥집에 가기 부담스러울 땐 서브웨이를 애용한다. 물론 친구들이랑 같이 먹기에도 좋다. 서브웨이 주문 팁(?)을 번호로 매겨보겠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씨푸드를 즐겨 먹었는데, 요즘에는 1)베지를 먹는다.


하티 이탈리안, 화이트가 비건 메뉴.

빵도 비건/논비건 구분이 가능하다. 파마산 오레가노와 플랫 브래드는 우유가, 허니오트와 위트에는 꿀이 들어가기 때문에 논비건. 2) 하티 이탈리안과 화이트는 비건이다.


통곡물이 좋다고 해서 화이트를 먹어봤는데, 촉촉 말랑한 플랫 브래드를 먹다가 화이트를 먹으니 퍽퍽해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건 덤) 그 다음에 먹은 건 최근이었는데, 하티 이탈리안이 생각이 안 나서 허니오트로 먹었다. 다음에는 하티 이탈리안을 시도해보는 것으로.

*꿀은 채취 과정에서 많은 꿀벌이 죽기 때문에 논비건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베지'를 선택하면 기본으로 들어가는 재료들. 초록초록-


처음에는 야채도 전부 넣어달라고 했는데 맛없어서 지금은 양파, 토마토, 양상추만 넣어서 먹는다. (대신 토마토 많이 넣어달라고!) 야채 넣기 전에 치즈를 골라야하는데, 3) 치즈는 빼고 먹는다.


4) 소스는 서브웨이 비니그레트(와인 식초),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머스타드도 비건이라는 말도 있더라.)이 비건이다. 서브웨이를 먹을 때마다 소스가 맛에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몰랐는데, 비건 소스로만 먹어보니 조금 다르긴 하더라.


아직은 적응되지 않는 맛.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 그냥 넷 중에 골라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들로만 냠냠. 이렇게만 먹어도 배 부르다.

서브웨이는 접근성도 좋고 메뉴도 다양하며 가격도 괜찮아서 부담이 덜 느껴지긴 하지만, 맨날 빵만 먹는 건 질린다. 그래서 한 번은 사무실 근처의 채식 식당을 검색했다가, 유명한 집이 두 곳 나오는데 그마저도 사라지고, 남은 곳은 혼자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비싸기도 해서 어떡하나 좌절한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 바나나로 때워야 하나 우울해하다가, 한 메뉴판이 눈에 띄었다.


채식 메뉴가 무려 네 가지나!

고씨네 카레

여긴 뭔데 채식 메뉴가 네 가지나 되지? (알고보니 일반적인 일본 카레집은 웬만하면 야채 메뉴가 따로 있더라. 카레를 즐겨 먹지 않아서 몰랐다. ) 채식 메뉴가 있다는 것 자체에 놀라서, 괜시리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인가 싶어 감동했다.


연한 채소 카레, 매운맛 1


채소 카레를 처음 먹었을 때는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풀때기만 잔뜩 들어있으면 어쩌지'걱정했는데 감자랑 당근도 이만큼이나 가득 넣어줘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물론 닭육수라 비건 메뉴는 아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친구랑 밥을 먹게 되거나, 정말 배고파 미치겠는데 편의점 과일 밖에 선택지가 없을 때에는 자주 먹는다.



채식주의자의 집밥


외식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완전 채식을 매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루 한 끼 정도는 외식을 하더라도, 두 끼는 집에서 먹으려고 했다. 그것도 아니면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요리를 못해서 같은 메뉴만 먹다보니 물려서 이번 주는 잘 못 해먹었지만, 그간 내가 집에서 먹었던 음식을 소개한다.



시리얼을 정말 자주 먹었는데, 우유를 끊고부터는 한 번도 안 먹었다. 그 간편함이 그리워서 최근에서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채식 전에 먹던 시리얼은 켈로그의 아몬드 푸레이크. 달달한데 마냥 설탕맛은 아니라 좋아했다.


이번엔 채식도 하니 기왕에 먹는 거 건강한 걸로 먹자 싶어서 포스트의 건강한 칠곡으로 선택했다. 우리가 먹는 곡물은 대부분 고도로 정제된 것이라 그 안에 포함된 영양소를 대부분 섭취 못한다. 패키지에 떡-하니 쓰여져 있는 '통곡물'이라는 단어에 낚여서 냉큼 집어들었다.

*뒤늦게 확인했는데 동물성 비타민D3가 함유되어있네요. ㅠㅠ참고해주세요.



우유 대신 두유를 부어 먹는다. 이 전에는 한 번도 두유를 사본 적이 없어서 마냥 비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사진은 어제 장보러 갔다가 발견한 행사인데 뭔가 잘못된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싸서 놀랐다. (혹시 두유 무슨 사건 터졌나요?...)  아몬드유도 맛있지만 자주 마시는 건 검은콩 두유다. 1회 제공량에 들어있는 칼슘이 일일 권장량의 30% 가까이 된다.

*삼육 두유는 논비건 제품입니다. 매일두유, 연세 유기농 두유는 비건이에요.


필수 재료는 감자와 버섯!(ㅋㅋㅋ) 제일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가 버섯이었는데, 내 돈으로 사게 될 줄은 몰랐다. 구운 감자와 버섯에 과일이나 양파, 김을 곁들여 먹었다.



감자 빠르게 굽는 법

1. 껍질을 깎는다.

2. 원하는 모양으로 썰고, 오목한 그릇에 담는다. (난 머그컵을 애용했다.)

3. 감자가 잠길 때까지 물을 붓는다.

4. 전자레인지에 넣고 5분 돌린다. (알감자 2개 기준)

5. 포슬포슬 익은 감자를 물에서 건져내 기름 두른 팬에 굽는다.

6. 완성!

*고구마도 같은 방법으로 하시면 돼요. 감자보다 빨리 익기 때문에 전자레인지를 조금 덜 돌리시면 좋습니다!


버섯은 특별한 조리법 없이, 기름 두르고 간장에 살짝 볶았다. 새송이와 양송이를 자주 먹었는데, 새송이가 좀 더 내 취향! 식감이 쫀득쫀득해서 좋다. 가끔 양파와 마늘을 소금 간해서 볶은 뒤 곁들여 먹기도 하고. 과일은 그냥 썰어서 내면 된다.



똑같은 메뉴를 도시락에 싸서 다녔다. 키위나 토마토는 썰어서 넣어다녔고, 바나나는 따로 들고 다녔는데 사진에 보이는 케이스가 아주 물건이다. 다이소에서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바나나 케이스! 지나가다 봤을 때는 이게 도대체 왜 필요한가 싶었는데, 바나나를 케이스 없이 가방에 넣어다니면 눌려서 뭉개지거나 터져버릴 위험이 있다. 이 케이스만 있으면 바나나도 안심하고 들고 다닐 수 있다.



1주차 식단 vs 8주차 식단


그렇다면 채식 전후 나의 식단은 어떻게 변했을까?


1주차 식단


채식하는 동안 먹은 음식들

1주차에는 동물성 식품은 물론 인스턴트, 패스트 푸드 등 가공식품을 엄청나게 먹어댔다. 1주차만 그런 건 아니고 채식하기 전까지는 저게 기본이었다. 반면 최근 식단은 식물성 식품이 대부분이고,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도 잘 없다.  딱히 이런 코멘트 없이 사진만 봐도, 훨씬 건강한 식단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채식일기 프롤로그)

채식을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는 '편식 줄이기'였는데, 싫어하던 음식들 중 대부분을 좋아하게 됐다. 항상 빈 그릇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버섯이, 이제는 가장 먼저 집어 먹게되는 음식이 되었다. 엄마가 맛있다며 브로콜리를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는데, 이제는 매일 아침 사과즙과 브로콜리를 갈아 만든 쥬스를 마신다. 두유는 없어서 못 마실 정도가 됐다. (야호!)


몸의 변화를 느끼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워낙 몸에 큰 관심이 없어서 둔감하기도 했고,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서 불편함도 못 느꼈으니까. 다만 내게 '건강한 식단'은 신체에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식단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가치를 내포하는 음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정신적인 위안 혹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특히 전자(식단의 주체적 선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왜 이 음식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들 먹으니까 따라 먹고, 원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과연 내가 선택한 메뉴들이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음식을 선택하는 데에도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는 게 기쁘다.


채식의 장점이나 육식의 단점이야 계속 말해오던 거고, 다들 이미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실 수도 있다. 다만 실천하는 것에 대한 진입장벽이 아직까지는 많이 높아보인다. 간헐적 채식이나, 군것질 거리만 비건으로 바꾼다든가, 채식 식당에 한 번 방문해본다든가 하는 큰 어려움이 없는, 할 수 있는 만큼의 방법들로 조금씩 채식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후기


치킨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1주차 때를 생각해보면 거의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1주일에 2~3번 먹던 치킨을 2~3주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다. (이정도면 인생혁명 아닌가) 치킨메이트인 동생도 어제 "요즘 치킨을 너무 안 먹은 것 같다..."하더라.


그것도 '치킨'을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금껏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치킨을 먹는 것'이어서 남아있는 관성 때문이랄까. 이것도 점점 더뎌지다가 끝내는 그만두게 될 것 같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을 목적으로 채식을 지속해보려고 한다.



좋았던 점

1주차 식단 사진을 남겨두기를 잘 했다. 사진으로 비교해보니 내 식습관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확 와 닿았다.

음식 해 먹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하지는 않았는데, 이 기회에 좀 해보게 됐다. 이제부터는 진짜 '요리'를 연습 해 봐야지!


아쉬운 점

이번 달은 그나마 시간이 좀 있어서 도시락을 싸 다닐 수 있었는데, 바빠지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고민이다.

이번 주부터 단체 생활을 하는데, 대처 방법을 몰라 걱정이다. 그냥 육식하게 될 것도 같고.




'그린을 더하다' 도시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린 라이프를 제안하는 매거진, 에드지와 함께하는 콘텐츠입니다.

http://ad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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