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로 8주 살기 -간식편-
나만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채식, 비건 따위의 단어는 뭔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처럼 느껴졌다. 경험해본 바로는 '채식'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군고구마나 (밑에서 말하겠지만)맥스 포테이토 칩처럼 우리가 평소에 먹던 것들도 비건에 속하는 식품들이 많다.
간식은 식사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낮다. 식사는 실패하면 적어도 몇 시간의 기분을 날리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지만, 간식은 먹고 별로면 다음부터 안 사먹으면 되는 거기도 하고,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 카페 같은 경우에는 맛 만으로 메뉴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공부하려고 자리 때문에 음료를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기왕 먹는 거, 몸에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의미있는 간식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앞에서 말했듯 간식 정도야 리스크가 큰 게 아니니까.
채식을 시작하고부터는 거의 하루종일 먹을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응? 딱히 채식하고부터는 아닌가...) 많이 신경 썼을 때는 며칠 동안 죽만 먹었던 적도 있는데, 과자는 당연히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채식하면 건강건강-한 음식들만 있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사진에 나오는 분은 심각한 비만이었다가 식단을 채식으로 전환하고 나서 오른쪽 사진처럼 몸매가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충격적인 건 왼쪽 사진 역시 채식을 하던 중에 찍었다는 거다. 이유인즉슨, 그녀는 동물성 식품은 먹지 않았지만 감자튀김이나 콜라 등의 가공식품을 많이 먹었다. 기름, 지방, 설탕, 가공식품을 모두 끊고서 정상적인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는데 간하지 않은 생야채나 채소에 죽만 먹고 있자니 분출(?)이 안 되는 느낌. 자극적이고, 몸에 해로운 맛이 절실해졌다. 혹시 비건 간식거리가 있나 찾아봤다.
가장 먼저 찾아봤던 건 비건 베이킹. (지난 번 마르쉐에서 비건 제빵사 분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곳곳에 비건 베이커리가 많았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231251&memberNo=10739108&vType=VERTICAL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803332&memberNo=15460571&vType=VERTICAL
하지만 빵보다는 조금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기 때문에 과자를 찾아봤다. 월간 비건에서 발행한 기사 중에 비건 과자들을 한 곳에 모아 보여준 게 도움이 됐다. 대부분 수입과자였지만, 꼬깔콘이나 인절미 과자 등 익숙했던 것도 많아서 좋았다. 특히 인절미 과자의 경우엔 채식을 하기 전부터 편의점 PB제품 중 최고라고 생각했던 상품이라 정말 신 났 다 !
채식 잡지 <월간 Begun>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077292&memberNo=401304&vType=VERTICAL
소개 뿐만 아니라, 비건 스낵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유제품 프리 식품 유통업체 <밀크프리>
http://healthysnack.creatorlink.net/
과자까지 있는 건 좋았는데 막상 결제까지 하려니 너어어어어무 귀찮았다. 결제도 결제고, 그걸 또 언제 기다리냐구... 군것질은 하고 싶을 때 딱! 해야 하는 건데, 인터넷에서밖에 살 수 없다니. 미리 쌓아두는 게 아닌 이상 위에서 나온 것들은 내가 먹을 확률이 0에 수렴한다.
http://www.realfoods.co.kr/view.php?ud=20170831000470
그러다 발견하게 된 게 리얼푸드에 게재된 <편의점에서 찾아본 '비건 간식>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없는 게 없는 편의점이라면, 비건 간식도 있을텐데 미처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기사를 읽어보니 수입 과자나, 뭔가 건강할 것만 같은 과자만 있는 게 아니라 패키지만 봐도 달고 짜고 자극적인 과자들이 많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맥스 포테이토 크리스프. 내 손의 두 뼘 정도 되는 커다란 봉지에 들어있는데 1,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 기대 안 했다가 맛에 놀라버린! 과자인데... 이게 비건이었다니.
원래도 좋아했지만 요즘엔 더 자주 사 먹고 있다. 이건 얼마 전에 발견한 건데 세 개 들이 팩으로도 나오더라. 물론 1,000원짜리를 사도 금세 다 먹어치우기 때문에 굳이 작은 걸 살 필요는 없지만... 휴대하기에는 좋다. *1,000원 패키지는 쓸데없이 포장이 큰 감도 없지않아 있다.
기사에는 안 나왔지만 가끔 먹는 또 다른 간식은 꿀호떡이다. 빵이니까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우유, 계란 모두 포함되지 않는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이유는 '꿀' 때문이다. 채취 과정에서 많은 꿀벌들이 죽어난다고 한다. 동물권을 중시하는 채식주의자들은 동물을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들을 착취해서 얻어낸 식품도 섭취하지 않는다고. 내 경우에는... 자주 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동물성 식품은 아니라 가끔 선택할 것 같긴 하다. 동물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주의하시길.
왼쪽에 있는 아몬드 브리즈도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일단 패키지가 너무 예쁘다....)전에도 말했지만 초코에몽을 하루에 한 팩씩 필수 식품 마냥 챙겨먹던 내가 갑자기 우유를 끊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때 나타난게 바로 대체재 아몬드 브리즈(초콜릿). 오리지널, 언칼로리, 바닐라 등 다양한 맛이 있지만 편의점이나 드럭 스토어에 주로 취급하는 제품은 초콜릿, 바닐라 두 가지다. 워낙 초코를 좋아하고 모험을 선호하지 않아서(...) 초콜릿만 먹고 있지만, 씨리얼을 말아 먹으면 맛있다기에 다음 주에는 오리지널을 세트로 주문해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매일 과자나 호떡을 먹기에는 죄책감이 드니 다른 대안을 찾았는데,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메뉴가 있었다. 군 고구마.(1,500원) 다른 편의점은 모르겠고 세븐 일레븐에서만 사 먹어봤는데,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목이 메어서 고구마의 단 맛을 못 느낄 때는 지나치게 달지 않은 아몬드 브리즈 한 모금 마시면 찰떡 궁합이다. (예전이었다면 미치도록 인공적으로 달달한 초코우유를 먹었을텐데, 그랬다면 고구마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 했을 것 같기도.) 포만감도 상당해서 가끔 여기에다 바나나 하나를 더해서 식사로 해결하기도 했다. 건강한 군것질!
채식을 시작한 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스타벅스 단골'이 되었다는 점이다. 스타벅스란 기업에 대해선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브랜딩도 잘 했고, 내 친구들 중에도 매니아가 많은데다 모든 프랜차이즈 카페 중에 배리어 프리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어서. 하지만 스타벅스를 포함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이야 식사를 실패하면 곤란하니 맛이 검증된 프랜차이즈를 자주 골랐지만, 카페의 음료 정도야 '음료수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어?'하는 생각이 강했다. 차라리 맛 보다는 인테리어, 시그니쳐 메뉴 등 그 카페의 색깔을 느끼는 것을 중요시해서 개인 카페를 선호했다. '프랜차이즈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한 몫 한 것 같고. 그랬던 내가, 이젠 카페 어디 갈까? 하는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여기 스타벅스 있나?" 되묻는다. (지난 달 말에 처음 가입했는데 플래너 따내기까지 성공했다...!)
그 이유는 '두유'옵션이다. 스타벅스는 커스텀 메뉴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단순히 '선택지가 다양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우유를 '못' 먹는 사람이 되니 가장 민감한 사람까지도 만족시키려고 하는 완벽주의, 혹은 배려가 깃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즐겨 먹는 메뉴는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티 라떼. 원래도 커피보다는 밀크티를 자주 마셨기 때문에 좋아하던 메뉴인데, 우유를 두유로 변경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맛 없을 것 같은데...하며 주문하고도 그냥 우유로 달라고 말할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뚝딱 해치웠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우유보다 훨씬 고소하고 맛있다. (굳이 비건과 관련이 없더라도 한 번 드셔보시길!) 알고보니 시럽이 3펌프나 들어간 거였는데, 두유로 변경해서 자동으로 넣어진 건가 싶었는데 우유로 해도 똑같이 3펌프가 들어가더라. 한 펌프씩 줄이다가 이제는 시럽 없이도 맛있게 마신다.
스타벅스 재료 성분표
http://ko.veganism.wikidok.net/wp-d/59a2a14be71bbc3a1278047b/View
글이 길어지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하고 마치겠다. 여기는 합정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가는 곳인데, 차 전문점이다. (인테리어 너무 예쁘고... 통유리라 햇빛도 잘 들고 넓어서 좌석도 많다.) 막 채식을 시작했을 때 밀크티 대체 음료로 아메리카노는 싫으니 차를 마셔볼까- 하다가 얼마 전에 생겼다기에 방문했다가 단골이 되어버린 곳.
안타깝게도 두유 옵션은 없지만, 차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질릴 틈이 없다. 5분 거리에 비건 베이커리 야미요밀도 있으니 합정역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가보시길. 실제로 합정에 가면 야미요밀에서 식사를 하고 후식을 블랑드 티에서 해결하곤 한다.
사실 식사를 비건으로 해보는 것을 권하기는 어렵다. 어딜 가든 동물성 식품이 함유되지 않은 식사를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렵고, 있다해도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간식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간식편을 따로 써봤다.
좋았던 점
편의점에 가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한참을 고르곤 했는데, 요즘엔 정해진 단골과자(?)가 생겨서 탐색 시간(?)이 줄었다.
아쉬운 점
내 채식의 주목적은 건강인데 맛있는 비건 과자들을 알아버려서 큰 일이다... 비건이라도 정제된 밀가루나 설탕은 몸에 안 좋은 건데.
'그린을 더하다' 도시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린 라이프를 제안하는 매거진, 에드지와 함께하는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