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성수동에서 열리는 힙한 파티!
캐럴이 카페 곳곳에서 흘러나온지는 오래.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변에서 소소한 혹은 성대한(?) 모임이나 파티가 자주 열리는데, 빠질 수 없겠다 싶어 냉큼 일정을 잡았다.
내가 선택한 곳은 12월 30일 성수동 su;py에서 열리는 너티 뉴 이어 파티 Nutty new year party. 어쩌다 페이스북 피드에 떴는데 포스터가 너무 예뻐서 뭔가 싶어 클릭해봤다. 알고 보니 제공되는 모든 음식이 비건인 파티라고!
Nutty new year party teaser
https://www.youtube.com/watch?v=UaW4zNII_0U
채식을 시작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채식'이라는 단어에 고정관념이 있었나 보다. 포스터와 홍보 영상을 봤을 때, 파티를 설명한 카드 뉴스를 읽기 직전까지도 '비건 파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푸드 라인업을 보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본 라멘부터 깐풍 새우, 비건 곱창까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다. 사실 파티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한 번도 이런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너티즈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uttiesparty
지난주에는 우연히 너티즈 파티 기획단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내친김에 인터뷰를 부탁드렸다. 단순히 채식을 실천하는 것을 넘어 파티까지 기획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야매 채식인이니까.
우리는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조그마한 언덕을 오르면 바로 나오는 카페 땡스에서 만났다. 원래는 공동 대표 두 분만 뵙기로 했는데, 마침 근처에서 기획 회의 중이셨다기에 운 좋게도 네 분 모두를 만나 뵐 수 있었다. 땡스 카페는 강남역 토즈 타워에서 수업 들을 일이 있어서 오며 가며 지나치다 봤던 카페다. 글루텐 프리라기에 눈독을 들이긴 했다만 딱히 갈 일이 없어 못 갔는데, 마침 여기를 제안하시길래 냉큼 좋다고 수락했다.
신기했던 건 제품마다 비건/저칼로리/글루텐 프리 표기가 되어있다는 점. 메뉴를 고르느라 서성거리다가, 베이커리를 공급하시는 대표님이 마침 가게를 방문하셔서 너티즈 팀원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디저트는 하나만 고르는 건 고역이라 초코바와 스콘을 종류별로 시켜 먹었다.
맛은 괜찮았다. 한창 이야기를 잘 하다가 메뉴가 나오자 다들 하던 말을 멈추고 포크를 들고 달려들 만큼. 그중에 제일 맛있었던 건 초코바. 처음 먹어봤는데, 땅콩버터가 같이 발려있어서 고소하고 덜 인위적인 초코맛이 나서 좋았다. 빵도 폭신하고.
그땐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파티 음식을 담당하시는 비건 셰프 린님이 마신 따듯한 애플 시나몬이 자꾸 생각나서 카페 땡스에 와서 애플 시나몬을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다. 겨울과 정말 잘 어울리는 메뉴!
너티 뉴 이어 파티는 고메 비건 푸드 Gourmet Vegan Food와 음악이 함께 하는 신년 파티다.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는 성수동에서 진행되며, 패션 편집샵 SU:PY의 비건&크루얼티 프리 cruelty free 제품 라인업이 소개된다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집어 먹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소개할 분은 너티즈 공동 대표 김수현님(기획), 안백린님(요리 기획), 이혜수님(운영), 윤수빈님(디자인) 총 네 분. 수빈님은 아쉽게도 사진을 못 찍었다.
나 저도 이번에 너티즈 파티에 가려고 하는데요. 음식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달라서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어떻게 파티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혜수 저희 프로젝트 목표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거예요. 보통 갖고 있는 편견이 금욕적이다, 자연주의자다, 조용하고, 미니멀리즘 추구하고...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런 고정관념으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비건 파티라는 말에 고정관념을 가졌던 게 생각 나 뜨끔했다. 확실히 '채식주의자'(나도 나를 그렇게 부르고 있기는 하지마는)라고 하면, 약하고 화장기 없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너티즈 분들은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으셨고 마냥 수수하지만도 않았다.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말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수현 파티명에 비건이라는 말을 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배경에 비거니즘이 깔려있긴 하지만, 그걸 메인으로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진 않았어요. 재미있는 파티, 독창적인 음식, 힙한 수피라는 공간. 저희도 '잘 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나 아,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사실 처음 포스터나 홍보영상을 접했을 때 채식 파티라는 걸 알고 엄청 놀랐거든요.
혜수 비건 파티라고 했을 때는 '비건도 아닌데 그런 곳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싶었죠.
확실히 그들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전달된 것 같다. 내 친구들만 해도 내가 공유한 포스터를 보고 무슨 파티냐고, 자기도 궁금하다고, 가보고 싶다고 연락이 마구 왔었다. 그 후에 채식 파티라고 했을 때 놀라면서 호기심을 가졌지만, 대뜸 채식 파티라고 했으면 보리밥 뷔페(...)를 떠올리며 별 관심을 안 가졌을 것 같다.
나 카드 뉴스를 봤거든요. 메뉴 중에 비건 곱창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혜수 네, 그것도 앞에서 말한 기획 의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인데요. 채식을 하지 않는 분들도 저희가 기획한 파티를 통해서 좀 더 쉽게 채식을 접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 논란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제 친구는 콩고기로도 뭐라고 하거든요. 그럴 거면 고기를 먹지 뭐하러 고기 모양으로까지 만들어가며 먹냐고요.
린 맞아요. 엄격한 비건 분들은 육식에 대한 이전의 욕망과 욕구를 재현시키는 게 아니냐고 비판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음식을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맛있고, 자기 앞에 차려주고, 편리하고, 가격이 싼 음식을 좋아하는 거죠. 사실 곱창처럼 생기고 식물성이라도 맛있기만 하다면 굳이 '난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곱창을 먹을 거야!'라고 하실까요?
수현 문화적인 코드가 있어요. 이 음식이 동물이기 때문에 먹는다, 보다는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치맥이지! 같은 거죠.
나 치킨이라고 하시니 확 와 닿네요. 저도 채식 중에 치킨을 먹으면서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진짜 치킨을 원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치킨밖에 없더라고요.
린 저희는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채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동물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있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채식'이 가능하기도 한 거거든요.
"넌 고기 먹으니까 잘못됐어!"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의 채식이라도 괜찮다는 말이 괜히 따듯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105
혜수 인프라를 제공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적인 문화가 강해서 채식이 더 힘들거든요. 모임 하랴, 뒤풀이하랴, 회식하랴... 대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나 그러네요. 우리나라에서 채식이 힘들다고 하는 건 들어봤는데, 집단 문화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 못 해봤어요. 사실 저도 다음 주부터 단체 생활을 하게 되어서, 팁이나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혜수 저는 빵집에서 일을 하는데, 소시지 빵도 있고 거의나 우유나 계란이 들어가잖아요. 계신 분들 대부분이 비채식인들이시고요. 고기를 드시면 '맛있겠네, 나도 예전에 좋아했는데.'나 '치킨 맛있지'하고 맞장구를 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먼 사람으로 느껴지는 게 싫어서요. 그러면서 대화를 하다가 소시지나 치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얘기해드리면 '채식주의자'의 말이 아니라, '이혜수'의 말로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다섯 분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세 분 정도가 비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따로 불러다 얘기한 적도 없는데, 어느 날 오시더니 '그게 맞는 것 같다.'하더라고요.
린 저는 계속 관련된 활동을 하다 보니 굳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조심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분들이 제 고민을 알 수는 없죠. 자신에 대해서 그냥, '요즘 이런 고민이 있다'면서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요.
혜수 오, 그거 너무 좋다. 항상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제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줄 안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김밥집 가서는 굳이 채식한다고 말하지 않고, 알러지 있다고 말해요. 사실 채식인들한테는 이미 동물성 식품이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건데, 기준에 있어서 관념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의지나 신념으로 먹지 않는 건 '안' 먹는 게 되어버리는 거죠.
수현 저도 그 고민이 공감이 되는 게, 저는 교환 학생 갔을 때 채식을 처음 접했거든요. 마트를 갔는데 한 켠에 비건 치즈나 비건 고기들이 따로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동안 채식을 했어요. 유럽에는 채식 인프라가 잘 되어있고, 어딜 가든 베지테리언 메뉴가 따로 있고, 마크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 인턴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 딱 식당을 가는데 '와, 인턴 새로 왔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고깃집!'이 러시는 거예요. 거기서 막 '아 저 고기 못 먹어요...'이 걸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못 했어요. 몇 개월 동안 못 하다가, 인턴 끝나자마자 페스코 채식을 하다가 자연스레 얼마 전부터 비건이 됐어요.
마지막 파트가 특히 인상 깊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물론 악의는 없었지만) 채식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본인은 비채식인임에도 채식인을 배려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감사하기도 하다.
이 외에도 채식주의자가 겪는 정신적인 어려움,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의 상관관계, 축산업 종사자들의 노동 착취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다 담지 못해 아쉽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차차 담고 싶다. 채식을 하시는 분들과 이렇게 마주 앉아 오랫동안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처음이라 이것저것 더 물어보지 못한 것 역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오는 토요일 파티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 12월 30일, 성수동에서 만나요!
티켓 결제 링크
http://storefarm.naver.com/nutties/products/2359271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