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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Apr 23. 2018

내가 무기력을 마주하는 방법

무기력할 땐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나는 종종 무기력을 느낀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때. 내가 욕망하는 것이 다룰 수 있는 범위의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두렵다. 그런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힘없고 나약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런 무력함을 버티기 위해서 내가 자주 혹은 항상 선택하는 방법은 내 탓하기. 상황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게 외부의 문제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땐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외부의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도 외부에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곧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을 하게 된다. 당장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내 안에서 찾을 가능성은 생기니까. 내 무기력은 종종 그러한 방식으로 합리화된다.



일로 인한 무기력


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생업'으로 인한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일이 없을 때, 즉 돈벌이가 안 되어서 무기력을 느낄 때가 있다.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할 정도의 일 하나 해내지 못해서 끙끙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때가 없다.


슬프게도 가장 힘든 건 본인인데, 그렇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밖에서도 욕을 먹는다. 능력이 없다거나, 게으르다거나, 성실하지 못하다거나 그렇게 비난스럽지는 않더라도 내 인생에 가까이 들일 필요가 없는 사람 정도로 취급된다거나. 혼자서도 알아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이 확인 사살까지 해주니 미칠 노릇이지.


재미있는 것은 일이 너무 많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벅찰 정도로 말이지. 욕심은 있어서, 혹은 없던 순간이 두려워서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벌려놓았다가 막상 닥치니 원했던 결과는커녕 수습조차 못할 때. 그럴 때도 무기력을 느낀다. 시간은 흘러가고 일들은 굴러가는데 포기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잘 해낼지 앞이 보이지도 않을 때. 나란 인간은 도대체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란 걸 다시금 마주하게 될 때, 무기력해진다.


적당한 지점이 어디인지는 아마 20대에는 찾지 못하겠지. 아니, 죽기 전에 찾을 수 있기는 할까. 나는 항상 0과 1 사이에서 불안을 짊어지고 줄타기를 하고 있을 텐데.




관계로 인한 무기력


관계. 고독을 견딜 수 없는 나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 느끼는 '인간관계'로 인한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나는 운이 좋게도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사랑을 주는 부모는 많지만 그것을 주는 만큼 받아들이는 자녀는 적은 것 같다. 그것은 자녀의 능력 때문은 아니고, 운 혹은 부모의 실력에 가까울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사랑스러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마는, 대가 없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은 꽤나 특별한 경험인 듯하다. 그 이후로는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무결한 믿음. 가족 외의 관계에서 그 믿음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 사실 그 믿음은 선후관계가 모호하다. 내가 사랑하는 인간이 내 가족인 게 아니라, 내 가족이니까 마음껏 사랑을 퍼주기로 결심한다든지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가족 외의 관계에서 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믿음을 교환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면 되겠구나.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내게는 그 관계가 '연인'이었다.


그 관계를 각자 어떤 것으로 설정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모두가 연인은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내 동생은 그 믿음을 인간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은 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나는 연인이었고,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리고 상대에게 과분한 시간을 쏟았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상대가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나를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을지가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는 것 아니야?라는 질문에 엄청나게 부딪쳤지만 결국 나를 떠나지 않게 하는 건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아무렴 뭐 어떠냐, 하고 그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관계란 일보다 훨씬 더 변수가 많고 가짓수도 다양하여, 매 순간 불안을 느끼기에 딱이었다. 이별을 겪을 때마다 그 연애를 돌아보며 변수들을 체크했다. 이건 이 부분을 잘못했고, 저건 저 부분이 실수였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이렇게 대처해야 하고... 


물론 전부 다 내 잘못이었다. 그래야 다음 연애 때에는 피드백을 적용한 내가 더 좋은 연애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애인 탓으로 돌려버리면 해결책은 그런 애인을 안 만나는 건데, 그건 아무래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 난 관계에서도 무기력을 피하려고 아등바등거렸다.


때때로 연인에게 섭섭한 면이 생기면 일단 섭섭하게 느끼는 내 문제는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라든지,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덜 해봐서라든지. 내 문제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 일이니 생각보다 쉬운 해결. 


하지만 도저히 내가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연인에게 부탁이나 경고를 한다. 그런 행동은 이러한 이유에서 조심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났으니 한 번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는 미칠듯한 불안을 느낀다. 때로는 섭섭하고,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슬퍼하기도 하면서 이 모든 상황의 탓을 상대에게 돌린다. 몇 번이고 말했는데 왜 안 고쳐주는 거냐고. 하지만 어느 날 비슷한 문제에 이전보다 덜한 감정을 느낀 순간 상황을 감정을 배제하고 바라보게 됐다.


사실 그 문제 자체보다, 내가 말했는데도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화가 나있다는 걸. 나는 내 무력함을 증명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내 말이 그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도,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내게 가장 가깝고 유일한 한 사람에게조차 영향을 끼칠 수 없는, 힘없는 인간이라는 걸 마주하는 것이.


다시, 무기력.



난 슬플 땐 글을 써


넌 힙합을 추고 나는 글을 쓰지


크게 분류하자면 일과 관계. 그 둘에서 무기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그런 무기력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벗어나느냐. 가장 좋은 것은 근본적으로 그런 무기력함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겠지만 방법도 모르겠고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도.


각설하고, 나는 무기력을 느낄 때 글을 쓴다. 일에서 내가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관계에서 내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글을 쓰려고 한다.


사실 지금도 할 일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게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이 글 쓸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 일을 하다 보면 무기력도 언제 찾아왔냐는 듯 싹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경험적으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일단 무기력한 상태에서 의지가 아닌 책임으로 이루어진 일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하더라도 효율을 감히 측정해볼 수 없었다. 차라리 글을 써서 무기력을 떨쳐내고 그 일들을 차례차례 해내는 것이 빠를 것 같달까.


그렇다면 내게 글은 어떤 의미일까. 글이 뭐길래 나는 무기력을 글로써 극복하는 걸까. 내게 무기력이란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 생각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을 잠시나마 극복하게 된다. 이를테면 일을 잘 해내거나 관계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거나 등등.


사실 관계에서는 무기력을 극복할 만큼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종종 일을 택하는데, 예를 들자면 무기력한 기분이 드는 순간에는 책을 미친 듯이 읽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을 채우는 것만으로는 공허함이 다 채워지지가 않아서,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행위로써 무기력을 극복해내기 시작했다.


보통은 글을 썼으니 몰랐는데, 글 외에 다른 것으로도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흠...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이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수필 형식의 글이므로 나밖에 할 수 없는 창작 행위이다. 그렇게 글을 만들어내고 나면 그나마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그렇게 무기력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하는 것으로.

여담이지만 그게 생업과 일치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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