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2018년에 <내가 책 읽는 방법>이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꽤 오래 유지했던 독서 모임에 대한 <가벼워서 오래 하는 독서 모임>이라는 글도 썼었다. 특히 북튜브 책읽찌라에서 일할 때에는 하루 안에 책을 읽고 스크립트를 뽑아내기도 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수련을 했었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책들을 읽어오면서, 어떻게 하면 더 빠르면서도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들을 실험해 봤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쓴다.
핵심은 적극적으로 독서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수동적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책을 빨리, 그리고 오래 기억나도록 읽으려면 '의도를 갖고' 적극적으로 읽는 게 중요하다.
먼저, 처음 시도했던 것은 버니스 매카시 교수가 개발한 4MAT을 독서에 활용하기. 가르칠 때 Why, What, How, If 네 단계의 순서로 정보를 주면 교육 효과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워크다. 이 프레임워크를 처음 알게 되고 나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고, 주로 글을 쓸 때(Output을 만들 때)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글을 읽을 때(Input을 넣을 때)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읽찌라에서 일할 때 빠른 시간 내에 책을 요약해서 영상 스크립트를 만들어야 했다 보니 영상 스크립트를 쓸 때는 무조건 이 프레임워크를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도 "아, 이 부분은 Why에서 쓰면 좋겠다.", "이건 If에서 쓸 수 있게 가공해 보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에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이 프레임워크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양식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이 책을 요약한다면 Why(혹은 What, How, If)는 어디에 나올까?'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책을 구조화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빨리 읽을 수 있다.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370
이것은 꽤 최근에 시도해 본 것인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았었다. 그는 문학, 과학, 음악 등 엄청 다양한 주제로 4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한 주제를 공부할 때 몇 백 권 분량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입력과 출력의 비율이 100:1 정도 된다는 말을 보고 그동안은 '책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말하고 싶은 취향이나 주제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만 하고 그만큼의 지식은 넣지 않았구나 반성했었다.
그런 초조함이 생기자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그가 말한 개념 중에 '음악적 독서'와 '회화적 독서'가 있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고 회화는 공간 예술인데, 이것을 독서에 대입해 보면 취미 독서는 음악에 가깝고 목적이 있는 독서는 회화에 가깝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음악은 내가 아무리 빨리 듣고 싶어도 온전히 시간을 들여서 들어야만 그 곡 전체를 들을 수 있지만, 회화는 전체 그림을 보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그의 요지는 정보 습득을 위한 독서는 회화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책 전체를 한 번 빠르게 훑어야 하는데, 그가 제시한 방법은 각 문단의 첫 문장만 읽는 것이다. 보통 첫 문장만 읽으면 그 뒤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대충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데, 흥미로울 것 같다 싶은 문단만 체크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권을 30분 안에 빠르게 훑고, 핵심인 부분을 다시 읽는 방식으로 부족한 내용을 채워간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221228
마지막으로 최근에 내가 책을 읽을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인 가추법(Abduction)이다. 이 방법은 AC2라는 교육 커뮤니티에서 김창준님께 배웠고, 이제는 이 방법 없이 책을 읽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인 독서법이다.
4MAT과 첫 문장 읽기 모두 좋은 방법들이지만, 4MAT은 프레임워크 학습 비용, 첫 문장 읽기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을 경우 어떤 문단을 읽을지 고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가추법을 활용해서 읽는 방법이다.
가추법이란 가설을 세워서 추론하는 방법이라는 뜻인데, 독서에 적용해 보자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 내용이 무엇일지 지금 현재 내가 가진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보고 읽는 방법이다. 나는 이 방법을 활용해서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질문을 만든다.
https://ko.m.wikipedia.org/wiki/%EA%B7%80%EC%B6%94%EB%B2%95
예를 들면, 최근에 회사에서 디자이너에게 라이팅을 교육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교수법에 관심이 많아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라는 책을 읽었는데, 읽기 전에 '세션 전에는 어떤 활동들을 해야 할까(Pre-training)?'라는 질문을 갖고 목차를 살펴봤다. 그 관점에서 보면 아래 목차에서 내가 읽어야 할 부분은 1장(사전 지식), 3장(동기 부여)일 것이다.
목차
서론 학습연구와 실제 수업을 연결 짓기
제1장 사전지식은 어떻게 학습자의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가?
제2장 지식을 구성하는 방법은 어떻게 학습자의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가?
제3장 학습자의 학습을 촉진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제4장 학습자는 어떻게 숙달에 이르는가?
제5장 어떤 종류의 훈련과 피드백이 학습을 향상시키는가?
제6장 학습자의 발달과 학습분위기가 학습에 중요한 이유는?
제7장 학생들은 어떻게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되는가?
결론 일곱 가지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기
그럼 나는 이 책을 서론부터 읽는 게 아니라 1장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1장도 전부를 읽는 게 아니라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액션 아이템 위주로 내용을 뽑으면 더 읽지 않고 3장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1장과 3장을 읽고 나면 질문들이 더 생기는데, 그러면 또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내용을 읽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나간다. 이 방법대로라면 책을 전부 읽지 않고도 필요한 내용은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1시간 안에 1권을 읽는 게 가능해진다.
긴 글을 통해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이 방법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알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는 김창준님의 수업에서 체험을 해보고 나서도 자기화를 하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건 같이 논의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김도환님이다. (도환님과는 예전에 영어 스터디 워디클을 함께 운영했고, 토스에서 같이 일했고, AC2에서 함께 배우고 있다.)
우리는 이 방법을 잘 익히기 위해 각자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서로 적용해 보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극복한 방법 등을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적화를 할 수 있었다.
김도환님의 글
https://dwan.kim/problem-oriented-reading/
우리가 수많은 삽질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모아 POR(Problem-oriented reading)독서법을 만들었고, 이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도환님이 워크숍 형태로 기획해 주셨다. 글만으로도 감이 온다면 스스로 시도해 보면 되고, 어떤 느낌인지 더 알고 싶거나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면 아래 구글 폼에서 신청해 보시길.(12명 선착순 마감)
추천 대상
책을 읽고 남는 게 하나도 없을 때가 있어 좌절한 경험이 있는 분
같은 책을 읽었는데 다른 사람보다 오래 읽었음에도 내용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분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만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읽는 분
책보다 다른 매체가 편해서 책에서 정보를 잘 얻지 않으시는 분
독서 모임을 좋아하는 분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궁금한 분
워크숍을 듣고 나면 앞으로의 독서 경험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사내에서 동료들과 이 방법으로 독서 모임을 했었는데 독서 모임을 많이 다녀봤던 팀원 분이 "지금까지 해본 독서 모임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요."라는 평을 해주시기도 했다. 책에 대한 관점이 180도 달라지는 독서 방식.
더 많은 분들이 더 풍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누리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김창준님의 Read less 세미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김창준님이 운영하시는 교육 커뮤니티 A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