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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마음 Jun 21. 2020

즐거운 인계 시간

삼교대 근무의 꽃

병원을 가 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간호사의 Excuse.

'지금은 인계시간이라 바로 응대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어떤 보호자나 환자들은 이 인계시간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해 간호사들끼리 스테이션에 모여 앉아 컴퓨터를 보며 떠든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시는 듯하다.)

인계시간이라고 그게 뭔데 그렇게 유세 떨면서 내 요구사항을 못 들어준다는 거야? 하실지도 있지만 일단 우리들의 얘기를 좀 들어주십사 한다. 


보통의 회사원들이나 다른 직종의 사람들은 이 인계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다 싶다. 나도 간호사 일을 하고 나서야 이 인계라는 것이 얼마나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것인지 깨달았으니까. 무릇 삼교대 하는 간호사에게 인계란, 8시간의 근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마무리 짓는, 근무의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인계를 줘야만 퇴근을 할 수 있고 인계를 받아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병원에는 늘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의사에게도 퇴근 시간이라는 게 있어서 외래 시간이 지난 오후에서 밤 시간이면 현저히 유동인구가 줄어든다. 절반 가량의 의사들이 퇴근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간호사가 빠져나가는 비율은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는 당직 개념보다는 바통터치라는 개념으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호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쨌든 내가 아니더라도 항시 병동에, 중환자실에 '간호사'는  간호사의 자리를 메꾸어서 일을 한다. 이런 탓에 인계는 필연적으로 간호사의 업무 중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인계를 주는 내용은 간략히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네가 인계받으러 오기 전에 이 환자는 이런이런 일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거 이거를 했더니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이걸 했고 지금은 이런 상태인데 앞으로 이걸 하지 않을까 싶다. 잘해 봐라'


우리의 인계는 의사의 그것보다는 좀 더 인문적이다. 간호라는 특성이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알아야 하는 그 사람의 재정상태나 가족관계, 그 환자의 심리상태 변화 같은 것까지도 자질구레하게 주려면 무궁무진하게 줄 수가 있다. 인계에 특정한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규 선생님들이 독립 후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라는 건 여담.


종합병원의 간호사는 대개 24시간을 8시간으로 3번 쪼개서 병원을 지킨다. 이게 삼교대 근무의 정의다. 우리가 근무하는 동안 감지하는 어떤 변화나 신호들은 인계를 통해 관찰되고 필요한 경우 의사에게 보고된다.


'이 환자는 내가 어제 봤을 때보다 뭔가 좀 더 처져 보이는데 또 부르면 눈 마주치고 할 거는 다 한다. 담당의한테도 말해놓긴 했는데, 혹시라도 더 의식이 처지는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할머니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날 보면서 우시더라. 왜 그러시는 거냐 물어봤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우시기만 한다. 딱 한 번 그랬는데 섬망이 오는 건지, 아니면 우울해지신 건지 모르겠다. 일단 인계만 주겠다.'

'이 환자는 입원 사실 비공개 환자이니까 주의해야 한다.'

'***님 Spo2 가 3시쯤에는 98까지는 됐는데 지금은 조금 더 떨어졌다. 앞으로 추이 보다가 target 밑으로 더 떨어지거나 하면 의사 보고는 해야 될 듯하다.'


이렇듯 내가 근무시간 동안 봐왔던 것들, 한 것들, 앞으로 환자의 계획 등을 다음번 근무 간호사에게 줄줄이 말해야 하다 보니 서로 기분 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풀어보도록 하겠다.


결론적으로 간호사에게 인수인계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간호사의 업무에 버젓이 포함돼 있는 일이기도 하고 환자 안전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일이다. (요즘에는 인계 시간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종종 보이기도 하지만 중환자의 경우에는 아직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외부적으로 보면 간호사들끼리 모여서 웅성웅성대는 것 같지만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누구 한 명이 말을 속사포로 쏟아내면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우스를 주도적으로 딸깍딸깍 하고 있는 동안 그 옆의 간호사는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차판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아, 인계 시간이구나 하고 10분 정도만 시간을 보내고 와주세요.

아침에 보던 그 간호사 대신 새로운 간호사가 '무슨 일이세요 보호자분?(환자분?)' 하며 (당신에 대해 거의 다 알고) 맞이할 준비를 마쳤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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