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요동치게 하는 단어
바쁨의 핑계로 아예 글을 손에 놨었다.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지만 현재의 상황에 아이처럼 푸념 밖에 되지 않는 글에 화나 나 타자를 치던 손가락도 펜을 들었던 손도 놔버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조차 잃게 만들어 쉬는 날엔 정말 누워만 있었다.
‘이래도 되나?’ 생각도 무시한 채 나를 위한 시간이라며 나 자신을 설득하고 시간을 외면했다.
자기 발전도 없었던 시간과 정말 바쁜 순간들이 겹치니 망가지는 나의 정신과 몸이었다.
어느 날 잠을 깼는데 왼쪽 어깨가 욱신했다. 근육통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칭해주고 주물러주며 잠깐 아픈 상황을 넘겼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무서운 거다.
그때부터 매일 어깨는 아팠고 결국 진료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 때문에 아파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나?’ 그 생각에 웃음이 났다.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손에 꼽았고 쉬는 날 나름 쉬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몸은 쉬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나보다. 나에게 주는 신호를 난 애써 웃어넘겼다. 그게 시작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몇 개월이 지나 또다시 아픔은 도졌다. 방치한 거다, 내 몸을.
다시 바쁜 시기가 오면서 부딪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다른 상사의 쉽게 뱉은 모진 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친하니까, 서로 삶에 대해 얘기를 했으니까, 이 사람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함께 갈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함 속에 모진 말은 욕보다 힘이 셌다.
열심히 했던 결과가 한순간에 나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그때 오래 일하면서 멘탈이 약해진 상태였나 보다. 그 말이 조용히 잠자코 있던 ‘퇴사‘라는 단어에 불을 지폈다.
어렸을 때처럼 한순간의 감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 시점을 통해 매일매일 퇴사 관련된 사항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이 회사가 마지막 이력서 내는 곳이다, 그 목적을 위해 더 버티기도 했고 성수기만 잘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날 일하게 했다.
그 목적을 깨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삶의 목적은 바뀔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당장 그만두면 소득에 대한 문제가 걱정이었다. 정신과 몸이 한 번 멘탈이 나가버리니 잠시 ‘쉼’을 줘야 하는 상황에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쉼’도 불안한 감정에
나를 또 희생시킬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을 바꿔보자, 다시 할 수 있다.
생각을 바꿔 세 달이 지났다.
해야 할까?라는 생각은 ‘해야 한다’라는 확신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조만간 퇴사하겠다는 상사에게 하려고 한다.
나에게 확신을 만들어 준 그 상사에게 아주 정중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