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성향은 다르니까
오늘 오랜만에 약속이 있어 밖을 나왔다.
평소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가는 행위와는 다른 누군가와의 약속이다. 소통의 자리에 낄 수 있다는 거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란 게 느껴졌다.
전철에 몸을 싣고 가면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홍보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다짐과 달리 하나의 책이 깊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도가 떨어진 거일 수도…
아님 열심히 살아가려는 의지가 바닥났거나.
이리저리 검색해 보다 예전에 종이책으로도 사 읽었던 책이 눈에 띄었다. 쉽게 읽혀 재밌었던 책이었지만 몇 번 망설였었다. 괜히 깊고 어려운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었다.
심오함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쓸데없는 자존심이지…
그날따라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아직 초반부만 읽었지만 몇 년 전에 책을 냈던 게 지금 다시 이슈가 되니 작가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앞서 알려주었다. 그 글을 보면서 나 또한 ‘그때와 지금은 나는 다른데 왜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거지?’라는 반성을 했다.
여전히 잘 읽혔고 예전과는 다른 감점을 느꼈다.
‘열심히’라는 기준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으로 글이 시작되었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노력해야지,라는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이란 게 쌓이면서,
도대체 열심히라는 건 어떤 기준이지?
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힘을 빼고 살자는 생각을 했다. 누구는 나보고 열심히 안 한다고, 노력이란 걸 안 한다고 했다.
그걸 누가 정한 기준인 건가. 사람마다 다른 생김새, 다른 성격, 다른 걸음걸이와 속도가 있는데도 자신의 속도에 맞추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으며 더 그런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다.
강사로 일했을 때도 느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기업에 노력하는 사람과 자신은 좋은 대학도 나왔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데 왜 남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지적받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 그게 정확했다.
지적을 받아도 그 부분을 받아드려 보완하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적은 변명으로 방어하고 피드백은 읽씹 하는 사람들.
딱 느꼈다. 열심히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표본, 난 그걸 일하면서 본 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적은 없었는가? 나는 어떤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가? 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세대 갈등을 일부러 만들어 버리는 듯한 미세한 차이의 말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 갈등에 관한 질문은 끊이질 않는다.
뭐가 옳고 그름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미세한 차이로 열심히 한다와 안 한다를 뚜렷하게 구분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했다 ‘고 말해놓고 양심 찔린 적이 있으니 내 속도와 기준에 맞춰 느리더라도 일단 나아가보려 한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