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런던의 새벽은 아직 쌀쌀했다.
가끔씩 건물 사이로 부는 곡풍이 창문을 흔들었다.
창가쪽 침대가 비어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제 잠에 들기 전 사장님께 조식을 부탁드린단 메시지를 보냈다.
“7시에서 7시반까지는 부엌으로 오세요.”
답장을 받고 어떤 메뉴가 나올까 궁금했지만 여쭤보진 않았다.
얼추 시간이 되자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불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제 몇몇에게 인사 했지만,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여행자도 있었다.
자신의 여행에 집중 하는것 같았다.
방안에서는 자발적으로 그들을 존중 해주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 간단하게 눈인사만을 건냈다.
“형님, 긴팔 입으세요. 가는 길이 꽤 추워요.“
이미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들을 알려주는 고참 여행자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꺼운 맨투맨 티셔츠를 챙겨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숙소에 처음 들어왔을때 인상적이었던 계단옆 1층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 끝엔 켈배로스가 부엌문을 지키고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층 복도끝의 문을 열자 세탁실이 나왔고 이내 외부로 연결되었다.
“여기 길이 복잡하네요? 부엌은 다른 건물인가봐요?“
“네. 저는 처음에 같이 오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헤맸어요. ”
외부엔 머리 셋달린 켈베로스가 아닌 고양이가 있었다.
사장님과 함께 사는 녀석 같았다.
우리를 보자 배를 까며 앞발을 까닥 거렸다.
여행자들이 익숙한듯, 사랑 받는 법을 터득한 고양이에게 다정한 아침인사를 건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안경에 김이 서렸다.
눈덮인 설산의 산행을 마치고 산장에 돌아온 산악인이라도 된 모양새였다.
사장님은 어제와 같은 복장에 앞치마만을 더해 입고 계셨다.
“오늘 아침은 닭개장이에요. 먹고 싶은만큼만 남기지 말고 드세요.”
부엌 안에 칼칼한 향이 퍼져 있었다.
한국에서나 맡던 향이 었다.
사장님은 내 국그릇에 닭고기를 잔뜩 골라 덜어주셨다.
“덩치가 크니 많이 먹어야지.”
덩치가 큰건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여러 반찬을 적당하게 덜어 자리에 앉았다.
같은방 성준씨가 숟가락과 젓가락도 챙겨주었다.
다른 방에 묵던 여행자들도 만났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아침 식사를 했다.
식탁 옆쪽 벽면엔 숙소를 다녀간 여행자들의 방명록이 가득히 붙어있었다.
다들 숙소에대해서 나와 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졌다.
나는 더이상 사장님을 오해하지 않기로 했다.
닭고기를 많이 주셔서는 아니다.
어제 저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무사히 부엌까지 안내해 준 성준씨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붙임성 좋은 사람이다.
아침을 먹고, 성준씨와는 내일 동행을 약속했다.
흐렸던 어제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맑은 하늘을 따라 비행운이 지나갔다.
비행운이 오래 남으면 습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날씨가 흐려지거나 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오늘은 나도 런던 사람들 처럼 비를 무서워 하지 않기로 했다.
런던에서 비를 맞는 경험도 여행의 일부일테니까.
목적지인 내셔널 갤러리 까지는 버스와 언더그라운드를 이용해야 했다.
날씨가 좋으니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도 좋았다.
교통카드에 대한 시행착오를 한번 겪어서인지 오늘은 자신 있었다.
사전에 오늘 여행에 대한 경비를 카드에 충전해 두었다.
언더그라운드역은 어제 도착한 복솔역과는 다른곳에 있었다.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동네를 구경했다.
어제 걸어왔던 복잡한 길과는 다르게 주거 환경이 많았다.
우리 나라 아파트 처럼 높진 않지만 낮은 아파트 단지도 있었다.
역에 들어서자 역무원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개찰구 앞에 서 있었다.
습관적으로 긴장을 느끼며 교통카드를 댔다.
이제 교통카드에 대한 트라우마는 떨쳐 버릴 수 있을것 같다.
2가지 호선이 지나가는 역 안은 복잡했다.
내셔널 갤러리까지 가는 플랫폼을 잘 찾아야 했다.
오랜만에 스크린도어가 없는 플랫폼에 서니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생각났다.
영국의 지하철 역에서는 아직 그런 로맨스가 있을 법 했다.
열차가 들어오는 터널이 튜브 같다해서 영국인들은 지하철을 '튜브'라고 부른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열차가 들어올때 안내방송이 없어도 저절로 한발짝 물러나게 됐다.
내부는 생각보다 좁았고 노후가 심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좌석은 맞은편 사람과 무릎이 닿을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우리나라가 지하철 참사를 겪었을때, 화제시 유독가스 문제 때문에 없어졌던 의자 시트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라는 타이틀은 노후된 시설도 클래식함으로 미화 시켰다.
네정거장 지나 버스를 타고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트라팔가 광장안에 있다.
트라팔가 광장은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 만큼이나 자국민들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광장 안에는 나폴레옹 전쟁당시 해군을 이끈 낼슨 제독탑이 있다.
광화문 광장엔 이순신 장군이, 트라팔가 광장엔 낼슨 제독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낼슨제독이 덴마크 해군과의 전투에서 철수 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망원경을 장님 쪽 눈에 대고 못 본 척했다'는 일화는 권력과 대신들에게 타협하지 않은 이순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신념을 지킨 그들의 모습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당한 권력에 맞서싸우는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 안은 소지품 검색이 엄격했다.
가져온 카메라를 전부 압수 당하고 나서야 입장이 가능했다.
미술에 대해선 아는게 많지 않아, 빠르게 고흐의 해바라기를 찾았다.
고흐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남긴 그림이 더욱 궁금해서였다.
말년에 정신병으로 고통을 받은 그의 삶에서 해바라기 같은 따듯한 색감의 그림은 어떤 의미 였을까?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마지막으로 남긴말은 "슬픔은 영원 할 것이다." 였다.
불행하고 싶어서, 슬퍼지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도 천재라면 모든 이가 다 써버린 이 세상의 재료가 아닌, 우주의 재료로 그 마음을 표현하려 했을까?
해바라기는 실제로 고흐의 인생만큼이나 복잡한 그림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오래동안 보았다.
색은 생각보다 바래 있었고, 거친 붓터치는 그의 인생을 느껴지게 한다.
시들어진 꽃잎도 보였지만, 아직 시들지 않은 꽃은 그에 비해 생동감이 느껴졌다.
고흐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것 처럼 보였다.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삶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몸부림 치며 자신에게 다가 와주는 사람들 기다리는것 처럼.
시간이 흘러 고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림이 말해주고 있고, 이제는 그 말들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오래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오래동안 이야기하는 고흐의 말을 끊을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나도 옆에서 고흐의 말을 천천히 가슴에 담고 있었다.
내 이야길 들어줄 사람을 찾는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