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파리 속으로 1
친구들을 만난 이후로 여행이 재밌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의 가장 고급스러운 바토무슈를 경험하고 돌아온 게스트 하우스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동규까지 떠난 파리의 숙소가 나를 더 외로운 감정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갈까 말까를 침대 위에서 한참 고민했다. 여행 출발 전 한국에서 구글맵에 찍어놓은 명소들을 여기저기 살펴보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해서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봐야 한다, 먹어야 한다에 사로잡혀 있는 원초적인 생각들. 여행에서 조차 나를 통제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
가보고 싶었던 명소들을 찍어놓고 목적지인 알렉산드르 다리까지 그냥 걷기로 했다.
밖에 나오니 땅이 젖어 있었다. 습한 기운 때문에 숙소 옆 중화요릿집 음식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주말의 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테라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유럽 사람들은 바깥을 참 좋아한다. 벤치보다는 잔디에 앉는 걸 좋아하고 음식점 안 보다는 바깥 테라스에 앉는 걸 좋아한다. 그들의 습성을 보기만 해도 몸에 비타민 D가 저절로 생기는 느낌이다. 걷다 보면 가정집 테라스도 눈에 띈다. 테라스 울타리 사이로 예쁜 화분들이 놓여있다. 가끔은 빨래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는 집도 있다. 창문을 열고 테라스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람, 테라스에 앉아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 공원 잔디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 트렌치코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 파리 사람들의 취향과 행동에는 어딘가 우아함이 느껴진다.
가장 먼저 숙소와 가까운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파리 시내에 이 건물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정리되지 않은 파이프나 배선들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어 어딘가 난잡하게까지 보이는 이 건물을 사람들은 '흉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이나 라파예트 옥상에서 퐁피두 건물이 한눈에 보일만큼 색과 규모가 눈에 띄었다. 건물의 알록달록함은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파란색은 공조, 녹색은 수도, 빨간색은 이동시설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파리 시내에 있는 현대 건축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퐁피두 센터에 가까이 가면 건물이 너무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건축가는 건물 주변의 광장을 경사 있게 설계하여 누워서 올려다보았을 때 건물에 한눈에 들어오게끔 했다고 한다. 퐁피두 센터를 한눈에 담으면 건물의 여러 색상이 잘 어우러 진다.
아쉽게도 비가 와서 땅이 젖어 있는 바람에 광장에 누워 그 규모를 담진 못했다. 퐁피두 센터를 구경하고 나와 걸어가면서 건물과 점점 멀어질 때 조금씩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하던 길에 파리 시청사를 지났다. 얼마 남지 않은 파리 올림픽의 광고물과 현수막이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시청사 앞의 광장은 우중충한 날씨에도 활기찼다. 공연을 하는 사람 주위를 사람들이 빙 둘러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한쪽에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런 '자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내가 요즘 관심 있는 '나 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의 장점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남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껴안고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낯간지럽지 않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진정 즐기고 행복해하는 표정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일 것 같다. 시청사에 있는 거의 모든 아이들은 비눗방울 예술가 앞에서 하늘에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좇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 아이들의 웃음은 저 예술가의 영감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예술가의 비눗방울에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는다. 도형이네 부부와 여행할 때 보았던 할아버지 밴드가 노트르담을 가는 길목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트럼펫과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들, 기타를 연주하는 할아버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할아버지, 알 수 없는 타악기로 박자를 맞추는 할아버지 다섯 분으로 구성된 밴드다. 흰머리와 낡은 악기들이 그들의 음악 인생을 말해 주었다. 연주가 끝나자 알 수 없는 타악기를 연주하던 할아버지가 펫말을 들었다. 자신들의 연주곡이 담긴 앨범을 판매 중인 것 같았다. 배낭 여행자가 아니었으면 그들의 열정적인 연주에 앨범을 사고 싶었지만 단지 5유로만을 기타 케이스에 넣고 공연을 잘봤다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할아버지 밴드의 거의 모든 앨범음악이 다 연주될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들보다 더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센강과 강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는 고건물들이 잘 어우러졌다. 밴드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눈길을 한번 주고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가 슬로 모션처럼 지나갔다. 오늘 할아버지 밴드의 음악이 파리시내 산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노트르담 성당에 가까워지니 익숙한 파리도시 사이렌의 백색소음이 들렸다. 노트르담 성당은 2019년 화재로 아직 복구 중이다. 성당의 목재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파리 시민과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나라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불길 안에 타고 있던 숭례문을 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다행히 주요 석조 구조물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성당 내부의 예술품 대부분도 긴급히 대피시켜 보존했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해 건물외관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보니 미학적인 균형미가 느껴졌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노트르담'이 이름으로 붙는 성당을 많이 볼 수 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여인(our lady)이라는 뜻이다. 여인은 일반적인 여성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그래서 노트르담 성당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당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무사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을 것 같다. 이곳을 지나는 나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노트르담 성당을 빠져나오니 거리에 사람들이 조금 줄었다. 오늘 여행 주제는 '여유롭게 걷자'인데 여행의 주제와 안 맞게 들르는 곳이 전부다 파리 시내의 랜드 마크다. 충분히 눈에 담고 느끼고 인파가 많은 곳은 빨리 빠져나오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이제 팡테옹으로 향한다. 비가 내려 젖어있는 정원들의 잔디향이 포근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오감을 만족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팡테옹으로 가는 길에 오르막이 나타났다. 오르막을 피해보려 빙 둘러 다른 골목으로도 걸어봤지만 팡테옹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피할 수가 없었다. 오르막 끝에 있는 팡테옹이 웅장하다.
팡테옹 앞 광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건물 크기에 압도 당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팡테옹은 이번 여행에서 내부관람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가장 크게 드는 곳이다. 걷기 여행의 주제를 지나치게 성실히 지키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당의 역할을 했던 팡테옹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프랑스 위인들의 무덤이 되었다. 80명 이상의 프랑스 위인들.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마리퀴리 등 프랑스의 유명한 업적을 세운 문학 철학가, 과학자, 정치가들이 안장되어 있다. 카뮈, 빅토르 위고, 발자크, 생텍 쥐베리, 스탕달, 프랑수아즈 사강등 헤어릴 수 없는 프랑스의 대문호들이 생각났다. 프랑스를 여행 오기 전 프랑스에는 어떻게 예술가가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란 궁금증이 있었는데 오늘 거리를 걷기만 해도 곳곳에 영감이 널려 있다는 걸 알았다. 뭔가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아름 다운 도시 전체가 그들의 영감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내 여행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을 글로 옮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것들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은 한정적이었고 작은 단위로 쪼개져 있는 복잡한 감정을 머릿속에 있는 한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독서에도 편식이 심했던 나는 그제야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나도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좋은 단어와 좋은 문장을 선택해서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서다. 소설들을 읽다 보면 내가 그곳에 있다고 착각하거나 촉감으로도 느껴질 것 같은 생생한 묘사들이 가득 차 있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만큼 그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이런 마음에서 글을 쓰고 싶은 지금의 나였다면 팡테옹에 들어가 문호들의 무덤 앞에서 묻고 싶다. 그런 건 어떻게 쓰는 거고, 어떤 경험을 해야 하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냐고.
그렇담 그들은 대답할 것 같다. 파리를 걸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