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랑 담배만 안 하면 적당히 건강할 줄 알았지.
책을 내고, 오랜 인연들에게 하나 둘 연락했다. 책을 낸 직후엔 축의금을 목적으로 연락하는 지인같이 비칠까 봐 부러 미적댔다.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 책 후기 별점과 판매량에 일희일비하느라 내 책이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고질적인 건강문제가 재발하기도 했고, 미쳐 돌은 백신 부작용과 급성 위장염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찾아와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도 한 몫했다.
누구에게 연락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한참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인연의 거리를 자로 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카톡에 저장된 사람은 몇 백 명인데 연락할 사람이 참 없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정 주고, 싸우고, 화해하고 인간관계에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연락하게 된 건 내 결실을 기뻐해 줄 사람들로 정했다. 짱 친하고 덜 친하고 기준은 너무 어려웠다.
코로나를 조심하며 카톡만 주고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차 한 잔 하며 진득하게 그간의 일들을 나누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님, 선배, 친구 등 호칭은 달랐지만 모두가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고맙게도 말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조금 안타까웠던 것은 다들 어딘가 아팠다. 신체든, 정신이든 말이다. 책 출간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함이었을 뿐, 몇 달 혹은 몇 년간 막혀있던 대화들은 조금 먹먹했다. 내가 몸이 아프다 말하면 신기하게도 상대도 몸이 아팠고,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었다 말하면 상대도 우울증에 대해 터놓았다. 너도? 야나두. 아니, 이런 슬픈 대화가 있나. 멀리서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자며 항상 빌어주는 게 서로의 건강인데, 서글픈 일이다.
나만해도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커피를 끊었다. 자제력이 좋은 게 아니라 먹으면 몸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약물치료를 많이 반복해서 그런가, 아예 안 받는 체질로 바뀌고 말았다. 무슨 맛으로 먹나 했던 디카페인 커피가 이리도 반가워질 줄은 나도 몰랐지.
친구가 주식과 집값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보다, 어느덧 석사를 졸업한 도비를 만날 때보다, 카카오톡 프사에 아기 사진이 늘어날 때보다, 난 내가 달님에게 소원으로 건강을 빌 때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곤 한다. 어렸을 적 어른의 무언가 같았던 커피도 건강해야 먹는다. 술이랑 담배만 안 하면 적당히 건강할 줄 알았지.
뻔한 말이지만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현실성 없는 얘기라 달님한테라도 기대어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