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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Aug 19. 2024

역시,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들어봐야 하는 거지

수면교육이란 거대한 탑(2)


조이는 쪽쪽이(노리개젖꼭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기였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쪽쪽이만 있으면 훨씬 쉽게 잠에 들던 아기가 어느 날부터인가 쪽쪽이를 빼버리고 자신의 왼손 중지와 약지 손가락을 한꺼번에 입에 넣어 쪽쪽 빨기 시작했더랬다. 쪽쪽이든 손가락이든 우린 상관없었다. 아니, 손가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입에서 빠져버린 쪽쪽이를 다시 꽂아줘야 하는 쪽쪽이 셔틀에서 해방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 빨기도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손가락 빨기를 언젠가 졸업시켜야 하는데.'라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링거 바늘을 꽂았던 손이 하필(?) 왼손이었다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참에 조이가 손가락 빨기를 졸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링거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돌돌 감아놓은 왼손을 입에 갖다 대기도 힘들었던 조이는 밤마다 놀고 있는 오른손을 입 앞까지 가져갔다 내려놨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그 손가락이 아니니, 차마 오른손 손가락 그 어느 하나도 입 속으로 넣지 못했다. 조이의 마음 안정제인 손가락을 입에 넣지 못해도 조이는 괜찮았다. 왜냐, 엄마가 잠자리에서조차 자신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조이의 안정의 근원이니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조이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랬다면 난 아이에게 잠들지 못하고 우는 이유를 백번이고 물었을 것이고, 아이도 백번이고 답했을 것이다. 엄마의 타들어가는 속만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울음밖에 없는 18개월짜리 아이의 마음도 타들어갔겠지.


조이가 잠자리에 들어가 울기 시작한 지 4일째 되던 날,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남편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퇴근한 덕분에 우린 함께 조이를 하원시키고 저녁 시간을 좀 더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마치 바벨(근력 훈련용 도구) 끝에 달린 웨이트 판의 무게를 절반으로 줄인 것만 같았달까.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것처럼, 육아는 역시 엄마 아빠가 함께 해야 훨씬 수월해진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조이의 울음을 그칠 방도를 쉬이 찾아낼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도 조이가 또 엉엉 울까?" 


당연히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삼일 연속 일어난 일이 오늘이라고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도 나와 머리를 맞대어 줄 남편이 돌아왔으니, 난 남편에게 몸과 마음을 심히 기울여 물었다.


"음..., 조이가 이제 손가락 빨지 않지?"

"응?! 이젠 빨지 않아."


"그렇다면 조이에게 마음을 안정시킬 방법이 없어져서 우는 게 아닐까?"


남편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이해가 되었다. 왜 나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가! 이제라도 알게 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마음속에서 온몸을 흔들어버렸다.


이미 조이가 왼손 손가락을 입에 넣지 못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족구로 인해 손끝에 수포가 생겼다 터지고 회복되는 과정 속에 손끝 피부가 한번 벗겨져 촉감(?)이 예전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이는 손가락을 입에 넣지 못한 채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어 그렇게도 구슬프게 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밤잠시간마다 조이에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절대 엄마가 되어선 안된다. 남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 곧바로 해결책이 떠올랐다.


"여보, 이제야 조이에게 애착 인형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아."


조이의 침대 위에 있는 많은 인형들 중, 조이는 그 어느 인형에도 크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엄마가 나설 차례이다. 확신의 찬 마음으로 조이와 함께 침대로 향했다. 우리만의 수면의식(절차)을 마친 후 조이를 눕히고선 나긋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조이야, 이제 코- 잘 시간이지? 이 토끼 인형이 밤동안 엄마를 대신해서 조이 옆에 있어줄 거야."


신기하게도 조이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듯했다. 조이가 엄마의 말을 듣고 토끼 인형을 꼭 안은채 울먹였으니까. 그 작은 입술을 앙다문 채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게 하려는 아이를 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살짝 저려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조이도, 엄마도 이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레벨 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치며.


"그러니까, 조이야, 잠이 잘 안 든다 싶으면 이 토끼 인형을 꼭 안아봐. 그러면 잠이 잘 올 거야."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토끼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아이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방에서 나왔다. 방문을 닫고 남편과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두근두근.


왼손 중지, 약지 손가락과 이별하는 것이 힘들어 엉엉 울었던 조이는 4일 차 저녁, 더 이상 울지 않고 성큼성큼 깊은 잠 블랙홀 속으로 들어갔다. 토끼 친구와 함께.


18개월의 끝자락에서 조이는 무사히 손가락 빨기를 졸업했다. 언젠가 이 일이 이루어질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온 것만 같아 우리 부부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수족구에 폐렴을 얹어 입원을 했던 우리 아이. 그 시간을 통해 나와 딸아이의 사이가 한층 더 친밀해졌고, 손가락 빨기까지 졸업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앞으로 조이와 함께 할 날들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일들이 좋게 느껴지든 나쁘게 느껴지든, 사건 사건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를, 그것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며.


토끼야, 오늘 밤도 우리 조이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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