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지 19개월을 훌쩍 넘긴 우리 집 하숙생은 오늘도 어엿하게 집안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 거침없는 몸뚱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내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같이 가자고 조른다. 엄마는 한 번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고 몇 번을 말하여도, 우리 집 하숙생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언제쯤 이 어미의 말을 알아들을꼬, 말하지만 나날이 체력이 늘어가는 조이와 발맞추어 내 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낫겠다 매번 생각하는 요즘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2시 40분, 새벽 출근을 했던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 거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발레핏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고 있던 나는 목소리만으로 남편을 맞이했다. 더위에 찌든 남편도 곧 옷을 갈아입고 내 옆에서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마친 후 시계를 보니 우리 집 하숙생 귀가 시간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안 되겠다, 서둘러 당 보충을 해야지. 우리는 시원한 포도로 목을 축인 후 각자 2차전을 준비했다. 새벽 일찍 일어난 남편은 잠시 쪽잠으로 에너지 충전, 나는 오래간만에 피아노를 치며 즐거움 충전.
오후 4시. 남편과 함께 조이를 하원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걸어서 3분이면 도착하는 어린이집 앞에 다다르자 건물 밖으로 나오는 조이가 보였다.
"조이야, 엄마 아빠 오셨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조이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다다다다 달려와 안겼다. 사랑받고 있다는 이 느낌. 이 짧은 순간에 마구마구 쏟아지는 벅찬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 이 대목에서 '행복하게 세 사람 모두 땡볕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답니다',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2차전은 늘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다행히도 하원 시간에 어린이집 마당 겸 놀이터에 그늘이 진다. 조이는 이곳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붕붕이도 타고, 실로폰도 두드려보고, 작은 수레도 끌어본다. 날이 더워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던 노란씨앗반 학생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현장이랄까.
"조이야, 이제 집에 갈까?" 남편의 말에 조이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여보, 조이가 집에 들어가려면 족히 30분 이상은 밖에 있어야 해." 하원길 무더위에 익숙해진 노련한 아내의 남편을 향한 조언이었달까. 하원이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에 나와봐야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니까?"남편은 척하면 척, 자신의 에너지는 최대한 아끼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조이의 움직임은 방해하지 않았다.
"그럼 그럼. 여기 남아있는 엄마들도 다 같은 마음이라고."
"이제 집에 가자." 혹은 "이제 집에 갈까?"와 같은 아무 힘도, 매력도 없는 제안만 가끔 놀이터 허공을 떠돌긴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사실 예의상 하게 되는 말이랄까. '최대한 이곳에서 힘을 빼고 집으로 들어가 엄마 아빠에게 수월한 육퇴의 길을 선물해 주렴.'과 같은 속내를 아이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여차저차 집으로 귀가하여 한바탕 물놀이까지 끝내고 났더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만 잘 넘어가면 우리 모두에게 휴식이 주어진다. 잘 넘어가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도 많은 우리의 저녁식사 시간. 식사를 하던 중 집중력이 떨어진 조이가 수저와 포크를 던지다 엄마 아빠에게 혼이 났다.
조이는 요새 혼이 나면 잠시 얼음, 했다가 눈웃음에 애교를 얹어 살며시 혼꾸멍에서 빠져나간다. 그럼 우리 부부는 서로 눈짓을 하며 복화술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얘, 눈치 보는 것 좀 봐."
언제 이렇게 커서 눈치라는 것도 보는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그래도 혼나야 할 땐 정확히 혼나야 하는 법. 단호하게 식사예절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난 후 식사자리를 정리했다. 살짝 풀이 죽은 것 같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다. 의자에서 해방된 조이는 신나게 거실로 달려갔다.
조이를 엄하게 혼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남편은 내게 "당근을 좀 부탁해."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알겠다는 사인을 보낸 후 조이와 함께 거실 소파로 갔다.
"조이야,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 조이를 내 무릎 위로 앉힌 후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조이야, 아빠랑 엄마는 조이가 잘못을 하면 혼낼 수 있어." 조이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빠랑 엄마는 조이를 사랑해."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이가 활짝 웃는다. 역시, 다 알아듣는 모양이다.
"엄마는 조이를 사랑해." 하고 딸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아빠도 조이를 사랑해." 설거지를 하던 남편이 큰 목소리로 말하며 얼굴을 찡긋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 고백을 받은 조이는 활짝 핀 꽃이 되었다. 엄마 아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엄마 아빠가 봐주기만 하면 행복하게 웃는 해바라기. 조이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얼굴 근육을 모조리 쓰는 미소와 마음을 간질이는 웃음소리에 엄마 아빠를 향한 사랑을 잔뜩 담았다는 걸 대번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또 우리 집 하숙생에게 넘치는 월세를 받은 건가.
그리고난 조이의 미소에 또 반해버리고 말았다. 나와 동생을 키우면서 수도 없이 "너무 예뻐서 반해버리겠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던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서 말이다. 그리고 딸아이를 바라보며 절로 흐뭇해질 때마다,내 나이즈음의 젊었던 엄마아빠의 표정이 자꾸만 그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피곤하고 피로하며 지치기도 수없이 하지만, 나는 오늘도 행복과 기쁨이 쏟아지는 육아의 현장 가운데 서 있었다.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간다.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나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흘려보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작은 해바라기야. 네가 아직 키가 작아서 고개를 들면 엄마 아빠만 보일 테지. 하지만 네가 몸도 마음도 자라나 엄마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 함께 하늘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