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수족구에 폐렴을 얹어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지속되던 열이 내리며 온몸에 울긋불긋한 반점들이 올라왔더랬다. 한산한 병동 로비에서 보채고 짜증내기를 반복하는 조이를 유심히 관찰하시던 한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 조이, 돌발진이 났구나. 조이가 오늘 하루는 이렇게 계속 보챌 거예요."라고 하셨다. 그 한마디 말이 조이 보호자에겐 퍽 위로가 되었다지.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 두 사람, 꽤 잘 지내고 있었으니까.
몇 시간 후 주치의 선생님이 조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셨다. 역시나 선생님도 조이 몸의 변화를 대번 알아차리셨다.
"돌발진이 났네요. 돌발진이란 게 뭐냐면, 돌발발진이라고 열이 올랐다 떨어지고 난 후에 생기는 붉은 반점입니다." 선생님은 최대한 보호자가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말씀해 주셨다. 쉽게 말해, 열꽃이 핀 모양이었다.
"이것 보세요, 피부를 이렇게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반점이 사라지죠. 이게 가렵거나 아프진 않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조이가 짜증을 낼 겁니다."
"어쩐지…, 선생님, 조이가 오전 내내 짜증을 얼마나 많이 냈는지 몰라요." 나는 마치 담임 선생님께 나를 괴롭힌 학우가 바로 여기 있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어머니, 파이팅 하세요!"가 전부였지만.
병실 밖으로 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그래, 내가 파이팅을 해야지….’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파이팅을 하다가도, 조이가 쏘아 대는 짜증을 나도 모르게 반사시키기도 했다. 밥을 손으로 주무르더니 바닥에 흩뿌리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채거나 짜증을 쏟아내고, 자기 마음대로 엄마가 해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빽빽 지르니 말이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상대는 18개월짜리 아이니 결국 이성적 판단 회로를 가동해 나의 감정을 다스려야만 했다. 그녀의 행태의 원인이 절대로 엄마를 약 올리려거나 힘을 빼기 위함이 아닌 돌발발진에 있다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왜 수많은 어머니들이 사랑스러운 자녀를 앞에 두고 “자식이 아니라 웬수야, 웬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논문이 있다면, 나의 경우는 서론 중 실례 3 정도의 내용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감사했던 건,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밤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이 든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 내가 스스로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조이를 돌보다 짜증이 솟구쳐 마음이 냉랭해지는 구간이 있었을지언정,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모성애는 나를 엄마답게 행동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양극의 마음이 공존하는 순간마다 모성애는 신이 어미에게 주신 선물임이 틀림없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꼬꼬마의 꼬인 링거줄을 쉴 새 없이 풀었고, 링거줄이 팽팽해지기라도 하면 링거 바늘 때문에 손등이 아플까 봐 링거 폴대를 서둘러 밀며 쫓아다녔다. 긴긴 밤동안 기침 소리가 들릴 때면 눈을 번쩍 떠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고, 링거 줄 때문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불편하다고 울면 안아서 어르고 달랬다. 그래서였을까, 원체 엄마나 아빠에게 잘 안기지 않는 독립적이고 활발한 아이가 엄마품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생후 4개월부터 분리수면을 해왔던 터라 입원 첫날밤, 우리의 합방은 피차 어색했다. 하지만 서로 아옹다옹하는 시간들이 쌓이자 우리가 한 공간에 함께함이 더욱 좋아졌던 것 같다. 조이의 짜증 너머에 있는 졸음이 읽히자마자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렸으니까. 조이는 기다렸다는 듯 와락 엄마 품에 안겨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낮잠을 잤고. 밤잠을 자자고 누우면 조이는 싱글벙글하며 엄마의 몸 위로 올라가 엄마를 꼭 안았고, 엄마도 있는 힘껏 조이를 안아줬으니까.
병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왔을 때, 내 눈앞엔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옥신각신하며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서로를 껴안으며 엄마와 딸이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18개월짜리 딸아이를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함께했던 병원 생활이 링거로부터 해방된 조이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 머무를지 알 수도 없고.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를 끌어안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어느 누구도 요청한 적 없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4박 5일.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이 시간을 조이와 나의 엠티(MT)라 기억하기로 했고, 이 시간이 분명 우리 모녀 관계를 조금 더 돈독하게 했다고 믿는다.
*엠티(MT): 구성원이 친목 도모와 화합을 위해 함께 수련하는 모임
지나간 우리의 시간을 추억하며,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질 날들 또한 기대해 보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사랑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