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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22. 2024

우리의 장마

간절함의 구름이 밀려온다.


6월 12일, 부대 내 어린이집에 입소 대기 신청서를 작성하고 나왔다. 올해 어린이집 0세 반은 2023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 1세 반은 2022년생부터 해당이 된다. 원장님은 부대 어린이집에 0세 반이 없어 23년 1월생인 조이는 1세 반(노란씨앗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노란씨앗반 정원은 5명. 현재 1세 1명에 0세 2명이라 자리는 남지만, 1세 반에 0세 아이들이 많아지면 선생님이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원장님이 신입생 받기를 미루고 계신다고 했다. 내 아이가 당장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선생님을 향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원장님은 두 명의 0세 아이들이 적응하여 다니고 있어 노란씨앗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해 보겠지만, 아무리 빨라도 여름이 지나야 조이가 입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만남을 마무리하셨다.


원장님께 때가 되면 꼭 연락 달라 간곡하면서도 정중히 부탁드렸다. 어린이집을 나서며 여느 엄마들과 같이 어린이집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조이를 등원시키는 모습을 그려봤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말로만 듣던 '어린이집 입소 대기'를 하는 날이 내게도 찾아왔구나, 하는 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어느새 조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가 오다니.'

'이제 나도 학부모가 되는구나.'

'우리 조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이런 감격의 색을 띠는 생각들은 아주 짧게 지나가버렸다. 장마를 앞두고 내 마음이 간절함으로 절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5월 중순부터 조이를 *시간제보육이 가능한 영외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조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횟수는 주 1회에서 주 2회로, 2회에서 3회로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6월이 되자 조이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회 3시간씩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시간제보육: 가정양육 시 지정된 제공기관(어린이집,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을 시간(또는 시간대) 단위로 이용하고 이용한 시간만큼 보육료를 지불하는 보육 서비스)


어린이집의 위치가 부대에서 차로 8분 거리였기에 남편이 출퇴근 시 쓰고 있던 차를 내가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장맛비를 뚫고 차 없이 출근해야 할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


그리고 우산을 든 채 조이를 차에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할 날들과 폭우와 더위를 피해 오후 내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할 어미새와 아기새의 날들이 그려져 더욱이 간절해졌다.


우리 세 사람뿐 아니라 노란씨앗반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에게 가장 좋은 때가 최대한 빨리 오기를 기도하며, 원장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6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였다. 장마가 곧 시작된다는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늘이 아주 파랬다. 파란 하늘 아래 조이를 하원시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마음의 기도는 쉼이 없었다. 카시트에 담겨 집으로 오는 아기새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3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 조이는 집이 반가워 졸음도 물리치며 놀았다. 그 반가움을 누리라는 엄마의 허용 속에서. 그러다 때가 되자 엄마의 낮잠행 열차에 실려가 결국 잠이 들고 말았지만. 조이의 낮잠 시간이 엄마의 휴식시간이 되건만, 나는 잠시 숨을 돌린 후 조이의 간식과 저녁식사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화가 울리면 놓치지 말고 받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걸까. 요리 중에도 휴대폰 진동을 놓칠 새라 휴대폰을 시야에 두었다.


마치 이 장면이 예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바르르 몸을 떠는 순간을 목도하고야 말았으니까. 액정 위로 모르는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올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다. 전화가 끊어질까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나의 응답에 대답을 한 이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집 원장님이었다.


원장님은 지난번 상담 이후 우리가 계속 신경이 쓰여 하루빨리 조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움직이고 계셨다고 했다. 노란씨앗반 담임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님들과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셨으며, 조이가 당장 7월부터 등원을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장마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입소 대기 신청서를 작성한 지 2주 반 만에 조이의 어린이집 입소가 확정되었다.




조이가 부대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22일이 되었다. 시간제보육을 했던 터라 조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했다. 첫 일주일 중 단 3일만 조이와 함께 2시간씩 어린이집에 있다가 돌아왔다. 그 후 이틀은 조이 홀로 오전을 보내고 왔고, 두 번째 주 화요일부턴 조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하원을 하고 있다.  


장마에 앞서 간절함을 쏟아부었던 내게 감사가 쏟아져 나오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장마는 어김없이 시작되었고, 남편은 차로 편히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마 중에도 나는 걸어서 아기새를 등하원시킬 수 있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날 하원 시간에는 비가 멈춰 온몸이 쫄딱 젖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장마 기간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간절함을 쏟아부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하고. 그런데 그러한 날들이 올 때마다 나의 간절함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정한 좋고 나쁨이 실로 좋고 나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겠지만, 언제나 나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되는 것에 끌렸으면 좋겠다 바라면서.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시작되는 법이다. 이번 무더위 속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쓰일까, 겁이 나면서도 기대가 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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