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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Sep 23. 2024

고향을 만나러 가는 길

육아는 과연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곤히 자고 있는 아기새를 일으켜 차에 탑승을 마친 시각, 새벽 3시 15분. 우리 세 식구는 사천에 이사 온 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우리의 고향을 향해 내달렸다. 어렸을 적 엄마 아빠를 따라 명절마다 시골로 내려가기를 수도 없이 하였는데, 추석이라고 사천에서 광명으로 올라가는 기분이 꽤 묘했다. 엄마 아빠도 이런 기분으로 차에 몸을 실었을까 하고 말이다.


멀리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조이를 보시던 시부모님. 너희는 매일 예쁜 조이와 함께 살아 좋겠다 하셨는데, 그 예쁜 손녀와 이틀 함께 지내보시더니 그 말이 어디론가 쏙 들어간 듯했다. 심지어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지 5일이나 지났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으셨다며 "일상으로 이미 돌아간 너희의 젊음이 부럽다"라고 하셨다. (아버님, 어머님- 조이를 봐주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결혼하면 무조건 아이는 둘 낳겠다던 아주버님도 귀여운 조카딸의 무지막지한 에너지에 기가 빨려 돌연 딩크족이 될 것이라 선포했다지. (아주버님- 감사해요. 그래도 훗날 2세를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는 남의 육아는 그저 아름답고 행복해 보일 뿐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리 경험해 봤다 하여도 세월이 흘러 옅어진 육아에 대한 기억은 아련한 영웅담이 되기 일쑤이고, 미경험자에게 육아란 신기루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긴 하다. 힘들고 벅차고 지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행복한 일. 겨자씨만큼 작았던 생명을 사람으로 길러내며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길. 그래서 우리를 길러낸 부모님의 지나간 세월이 더없이 소중해지고 감사해지는 일.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훗날 우리를 뒤따라올 길.




내가 20대의 한복판에 서있을 무렵, 나의 부모님은 '부(父)'와 '모(母)'로만 남기를 선택하시고 헤어지셨다. 그리하여 나와 내 동생은 늘 엄마와 아빠를 따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퍽 아쉽고 서글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10년 정도 지난 오늘의 나는 슬프기만 하거나 마음이 아프기만 하지는 않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님이 여전히 우리의 아빠와 엄마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니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아빠 그리고 엄마와 각각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나도 어엿한 엄마가 되어 나의 딸과 함께 아빠와 엄마를 만난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마다 벅찬 감정이 한 번씩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데, 손녀를 바라보는 아빠와 엄마의 눈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나의 어린 시절과 젊디 젊었던 아빠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자꾸만 그려진달까.


이번 연휴에 큰일을 하나 치르고 왔다. 엄마가 살고 계시는 친정집에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짐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엄마와 동생이 차마 처분하지 못했다며 고이 모셔둔 나의 보물 상자들을 내 눈앞에 꺼내놓았다.


4개의 상자 안에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이며, 생활통지표, 나의 10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다이어리와 편지들, 그밖에 잡동사니까지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꺼내들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보여서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며 기억할만한 것들은 사진으로 찍고 챙겨갈 것들만 남겼다.


보물 상자 속에서 발견한 것들 중 가장 진귀한 보물은 바로 아빠 엄마가 내게 썼던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였다. 분명 잊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봉투 안에서 끄집어낸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이걸 받았던 날의 기분이 상기되었다. 지금 막 카드와 편지를 받은 것처럼 기분도 좋아졌고.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찬찬히 읽어보고 싶어 집으로 가져왔다.

 


24년 전 이 편지를 썼을 아빠 엄마를 생각해 봤다. 그 시절 부모님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그렇게 젊었던 나의 아빠와 엄마는 어린 두 딸을 기르고 계셨다. 아이를 기르고 있는 오늘의 내가 편지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아빠를 만나고 엄마를 만났다. 그러자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었던 우리 네 식구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시절엔 몰랐다. 내 생각보다 내가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나를 길러내는 그 긴 시간 동안 아빠가 아빠의 역할을,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냈는지도. 그러니 오늘의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나의 열심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고백해 본다.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이것은 아름다움과 행복이 단순하고 얕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초보 엄마의 단언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 부부가 딸아이를 길러내며 겪게 될 미래이기도 하고.


손녀의 얼굴 속에서 자꾸만 딸의 얼굴을 발견해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이번 명절이 짧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겨졌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추석 명절을 보내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아빠 엄마가 나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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