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생각 없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여 아내의 다리 위에 병뚜껑을 올린 후 지그시 눌러본다. 그리하여 남편은 또 내게 갑절의 보복을 당한다.
"당신은, 이렇게 보복당할 거란 걸 알면서도 이게하고 싶은 거야?"
"여보, 조이가 호기심이 많잖아. 누굴 닮은 거겠어?"
"그래서 그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기어이 나에게 장난을 쳐본다, 이거지?"
남편은 3년 하고도 4개월간의 결혼생활을 하며 아내의 손이 점점 더 매워진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솜방망이 같던 가녀린 아내의 손이 자신을 간질이듯 살짝 스쳤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나도 기억한다. 나의 힘을 숨겼던 지난날들을. 하지만 실상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남편이었다고 주장했다. 남편도 역시 내 말을 반박하지 못했지만 장난을 쉬이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조이 좀 봐바. (어떤 행동을)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눈치 한번 싹 보고 해버리고. 거기다 우리가 하는 말도 못 들은 척하잖아."
그렇다. 남편은 자기 자신을 19개월짜리 딸아이와 동급으로 만들며 자신의 장난을 합리화시키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심은 곳에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이 나왔다고 스스로 입증까지 한다. 이러한 변론이 매를 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이의 고집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 늘 말하는 남편. 사실을 사실이라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이 남편의 방식이긴 하니, 남편의 수준을 19개월로 봐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너무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대체 당신은 왜 나한테 그렇게 장난을 치는 거야?”
“왜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장난을 칠 상대가 당신밖에 더 있어? 가족이니까 그렇지, 안 그래? 당신도 나한테 장난치잖아.”
“내가 언제?”
“이것 봐. 이래서 사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는 남편에게 장난을 치는가? 남편보다 빈도수는 훨씬 낮지만 가끔 무방비 상태인 남편을 가만 두지 못하고 장난을 칠 때가 더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장난을 시작하는 쪽이 보통 남편이긴 하지만, 열의 세네 번 정도는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장난을 먼저 쳤을 때, 당신이 나한테 보복을 한 적이 있었나?”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편이 내게 장난에 대한 보복을 했던 기억은 없다.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당신에게 보복을 하지 않지. 왜냐, 당신은 늘 나에게 제곱으로 보복을 하니까.”
남편의 대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에게 장난치는 아내에게 보복하지도 못하는 남편이라니.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회피, 아니, 순응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남편이 장난을 칠 때마다 제동을 걸기 위해 제곱으로 복수를 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제곱녀'라고 부르며 말이다. 남편은 내게 늘 제곱으로 당하면서도 장난을 멈출 생각을 안 한다. 그러니 나 또한 제곱으로 갚아주는 걸 멈출 마음이 없고.
그런데 오늘 남편은 나의 보복이 전혀 보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내의 보복조차도 재미로 느껴진다고 덧붙였고.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남자, 나랑 노는 게 정말 즐겁구나?!’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두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해야만 ‘장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짓궂은 행위. 서로의 관계가 평화로울 때, 상대의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시작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 상대가 설정해 놓은 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이것을 종종, 아니 자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사이의 장난의 빈도가 우리 부부의 관계 기상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이의 얼굴에서 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우리의 모습을 반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조이가 조금 더 커서 우리와 상호작용이 더 원활해지면, 우리는 훨씬 더 재밌게 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론 진지하지만, 진지한 시간보단 여유롭게 장난을 주고받는 시간이 훨씬 많은 4년 차 부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고 장난을 칠 수 있는 친구 같은 부부였으면 좋겠다.
오늘도 난 남편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아내를 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천진무구한 장난꾸러기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