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사바나의 앨리스

Alice in Savanna

by 생각많은얼룩말


띵 띠로 링, 띵 띠로 링-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더 자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켜야 했고 출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세수를 하며 생각했다.


‘역시 어젯밤에는 내가 너무 감상적이었어.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고가 이성적으로 흐르지.’


어젯밤 부풀어 올랐던 열정과 꿈은 기분 좋은 밤 잠을 위한 준비였을 뿐인가. 한 컵 가득한 물을 마시니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싶지만 시곗바늘보다 속도가 느린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서둘러 집에서 나오는데 현관 바닥 타일이 언제부터 격자무늬였는지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꽤 선선한 아침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높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집이 단독주택으로 변해있었다.



속도를 늦췄다. 지금 굳이 빨리 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버스 정류장이나 놀이터, 편의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눈앞에 쭉 펼쳐진 길을 따라 걸었다. 기분 좋은 산책길이었다. (물론 산책을 하겠다고 집을 나선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걸었을까, 저 멀리 버섯같이 생긴 집이 보였다. (‘문도 있고 창문도 있으니 집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버섯의 갓은 예쁜 빨간색으로 왠지 독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은 하얀 점들을 가졌다. 나는 버섯 집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문을 두드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똑똑, 문을 두드렸다.


“저기, 누구 안에 계시나요?”


방문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진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됐지만 이미 문 안쪽에서 들어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왜 이른 아침부터 남의 버섯 집에 이렇게도 용기 있게 방문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1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딱히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난 후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오렌지색 바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렌지색이라니, 여기 집주인분은 취향이 독특하신가 봐.’


너무 꾸물거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 끝 방문이 없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어서 와요, 반가워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무래도 자기소개를 해야 할 듯했다. 아침 일찍 찾아온 불청객일 수도 있으니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이다. 그런데 내 이름을 꺼내려는 찰나, 이 집의 주인인듯한 남자는 내 말을 가로채버렸다.


“알아요, 앨리스. 제 첫사랑 이름과 같아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죠. 하하하.”

“네? 아니, 제 이름은요,”

“앨리스, 여기 편히 앉아요.”


아무래도 이 남자는 내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자신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제야 그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 참, 내 소개를 안 했네. 내 이름은 머스태쉬예요. 닥터 머스태쉬(Dr. Mustache). 그냥 편하게 머쉬라고 불러요.” (mustache는 콧수염이란 뜻의 단어이다.)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지만 씰룩거리는 입은 숨기지 못했다.


“아, 혹시 그래서… 버섯(mushroom; 머쉬룸) 집에서 사시는 건가요?”

“빙고! 이 집을 짓느라 얼마나 애먹었는지. 내가 버섯을 좋아해요.”


이런 질문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서 이런 긍정의 대답이 나올 줄도 몰랐다. 버섯을 좋아해서 이름이 머쉬인 건지, 이름이 머쉬여서 버섯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머쉬라는 사람이 차갑거나 딱딱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앨리스, 아침식사했어요?”

“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아침식사했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분명 그랬다. 나는 회사로 출근을 하기 위해 여느 때와 같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이런, 사바나로 출근을 하셨군요.”

“네? 사바나요?”

“그래요, 사바나. 앨리스가 두 발로 걸어 들어온 이곳이 사바나입니다.”


사바나라니. 나만이 알고 있던, 내 상상 속 세계의 이름을 이 버섯, 아니 머쉬 선생님이 내뱉었다.


“사바나….”

“하하하. 여기가 열대 초원지대가 아니라 놀랐나 보군요. 하지만 여기도 사바나가 맞아요. 곧 익숙해질 겁니다.”


사바나라.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만 같았다. 너무 피곤했던 내가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표정이군요. 자, 차 한 잔 들어요. 영지버섯 차예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머쉬 선생님,”

“노노, 그냥 머쉬라고 불러요.”

“아, 네 머쉬. 그런데 혹시, 예전에 뵌 적이 있을까요? 제 이름을 알고 계시잖아요.”

“하하하. 우리 지난주에 봤어요. 제가 앨리스를 찾아갔죠. 왕진이라고 하죠. 앨리스, 책 읽기가 어렵다고 했잖아요.”


머쉬의 말에 마른 웃음이 나왔다.


‘사바나 닥터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고? 상상 속 사바나 닥터가?’


‘말도 안 돼’를 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머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앨리스, 그래서 책 읽기를 조금씩 하고 있나요?”

“아, 물론이죠. 조금씩 책을 읽고 있어요.”

“오우, 아주 좋아요!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히 얘기하도록 해요. 나는 이제 곧 다른 곳으로 왕진을 가야 해서.”


머쉬가 왕진 가방으로 보이는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럼 저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런데요, 머쉬. 혹시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을까요?”


머쉬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지만 답변을 미리 알 수는 없는 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머쉬는 이런 나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요 앨리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친구가 생길 겁니다. 그럼, 우린 나중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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