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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22. 2021

순두부의 저주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남편과 나는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발단은 이렇다.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결혼 후 처음 순두부찌개를 끓였는데 찌개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남편은 내가 해준 요리가 본인 입에 맞을 경우, 한 숟갈을 떠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냄비나 프라이팬에 그 음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꼭 확인한다. 순두부찌개를 끓였던 그날도 남편은 어김없이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찌개가 너무 맛있어! 얼마나 남았어?"

"이제 처음 한 그릇 먹었으니 아직 넉넉하지."


남편이 맛있다고 해줘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난생처음 끓여본 순두부찌개로 성취감을 얻은 초보 주부는 남편이 또 해달라고 하면 얼마든 더 만들어 줄 의향이 가득했다. 순두부찌개를 두 번째 먹던 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여봉봉, 순두부찌개가 너무 맛있어. 다음에 많이 끓여줘."


순두부 하나 넣고 끓였던 찌개에 순두부 2개를 더 넣어 양을 늘려줬던 그날,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왕창 끓여줘."


남편의 요청에 나는 다음번에 필히 순두부찌개를 왕창 끓여주겠노라 약속했다.


5월의 마지막 목요일. 전날 까다 만 마늘을 오늘은 기필코 다 까겠노라 하고 결단한 날이었다. 그날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전주 토요일에 장 보러 가서 사 온 1+1 순두부가 있었다. 마늘을 열심히 깐 후에 저녁식사로 순두부찌개를 끓일 요량이었는데, 바짝 말라붙은 마늘 껍질 때문에 나는 계획을 틀어버렸다.


나는 마늘을 물에 담가 두고 집 밖으로 나섰다. 도저히 마늘을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큰 맘먹고 나의 새로운 동네와 친해지기 위해 40분 + 40분을 걸었다. (*<나의 새로운 동네>, 이전 에피소드를 참고하세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유를 사기 위해 작은 마트에 들렀다. 그때 내 눈앞에 1+1 순두부가 보였다.


'순두부찌개를 정말 왕창 끓여버려?'


나는 순두부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냉장고에는 순두부가 4개나 되었다.



순두부 4개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그렇게 끓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담하게 찌개에 순두부 4개를 투척했다. 그렇게 순두부찌개를 왕창 끓였다. 옛날이야기에 마귀할멈, 아니 자상한 할머니가 큰 솥에 끓이는 수프처럼 말이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순두부 대환장파티를 시작하게 되었다. 찌개로 가득한 냄비를 보니 냄비가 냄비로 안 보이고 솥처럼 보였다. 솥을 열 때마다 솥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직 많아."

"걱정하지 마. 아직 많이 남았어."

"많. 아."

". . . ."



매번 먹을 때마다 맛있긴 했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순두부를 해치우기 위해 애를 썼다. 굳이 일주일 내내 먹을 필요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왕창 끓인 순두부찌개를 다 먹고서 우린 한 달간 순두부찌개의 '순'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느덧 7월의 반이 지나갔다. 남편과 나는 장을 보기 위해 2주치 식단을 짜기로 했다. 식단을 짜기 위해 5, 6월 식단표를 참고했는데 우리는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순두부가 한동안 없었네."

"그럼, 먹을 수 없었지.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먹지 않았잖아."

"먹을 때마다 정말 맛있게 먹긴 했는데,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더라고."

"맞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안 나는데···, '순두부의 저주'라고 느껴질 정도였다니까."

"크크큭, 우리가 욕심부리다가 아주 된통 당한 거지. 그래도 이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두 달만에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다. 순두부 딱 2개만 넣어서. '순두부의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한 날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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