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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26. 2021

초파리 사냥꾼


무더운 일요일 오후, 나는 남편과 점심으로 시원한 냉면을 먹었다. 전날 밤 TV에서 나오는 비빔밀면을 본 이상 우리는 점심 식단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원하고도 배부르게 점심식사를 해놓고선 나는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멸치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주부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저녁식사 준비시간에 정신없을 나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톡톡히 깨달은 초보 주부의 선택이었다.


"저녁에는 소고기 배춧국을 끓일 거야. 내가 며칠 전에 레시피를 알아냈거든."


그리고 남편과 나는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청포도와 자두를 씻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냈다. 과일을 잠시 물에 담근 사이 남편은 자리를 떴다. 남편의 눈에 유독 잘 띄는 초파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집에 초파리가 3마리나 있어."

"1마리 아니야? 아까 화장실에서 1마리를 봤는데, 그게 여기까지 날아온 게 아닌가?"

"아니, 화장실에서 1마리, 부엌에서 1마리, 현관 쓰레기통 주변에서 1마리야. 난 분명히 봤어."


화장실에 있는 초파리 잡기는 잠시 포기했는지, 남편은 부엌 초파리를 잡겠다며 내 옆을 계속 서성였다. 초파리를 주시하던 것 같은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치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뉘앙스로 말이다.


"그런데 다시마는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좀 떨어지는 거 아냐?"

"응, 그래서 10분만 있다가 꺼내려고 시간 보고 있었어. 근데 그거 내가 알려준 거잖아."

"아···, 그랬지? 내 기억 어딘가에 있었던 건데, 그게 여봉봉이 넣어준 거였구나."


결연한 초파리 사냥꾼의 어설픈 상식 자랑에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화장실과 부엌을 오가던 남편은 결국 내게 비장하게 전기 모기채의 행방을 물었다.


"초파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여봉봉, 타닥이 어딨어?"

"초파리 사냥꾼이 나타났군. , 여기 있어."


날도 더운데 긴팔 긴바지로 그려서 미안해 여봉봉.



전기 모기채를 건네받은 남편은 몇 마리인지 정확히 모르겠는 초파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내가 볼 땐 초파리가 분신술을 쓰는 거 같았는데 말이다.


과일을 씻는 내 등 뒤에서 남편은 이리저리 모기채를 휘둘렀다. 타닥. 타닥. 타닥. 남편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나를 힘껏 불렀다.


"여봉봉! 초파리 3마리 다 잡았어!"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초파리가 정말 3마리나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게 자랑스럽게 초파리를 다 잡았노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 것 같았지만 초파리는 어디서 인지 모르게 자꾸 한 마리씩 나왔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열심히 초파리를 잡느라 수고했지만.


나는 이렇게 어제의 일을 회상하며 초파리 사냥꾼을 기다리고 있다. 초파리 한 마리가 오전부터 계속 거슬렸기 때문이다. (잡으려는 시도는 많이 했으나 너무 날쌔어서 잡지 못했다.) 일단 초파리 사냥꾼을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겠다.



오늘도 전쟁이다.

초. 파. 리.




P.S. 초파리 사냥꾼, 타닥이보단 본인 손이 더 빠르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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