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피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었는지 몸살 기운이 돌았다. 누군가 나에게,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더니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해줄 만한 딱히 괜찮은 대답이 내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일상은 육아와 육아, 그리고 육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꼭 그런 이유로 몸살이 난 것이 아니라면, 내 눈앞에서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조이에게서 감기 바이러스를 받은것이 틀림없다.
남편의 배려로 잠시 눈을 붙이고 뜬 후 유튜브로 뉴스 영상 하나를 시청했다. 저출산의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앤 윌리엄스 교수(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의 입으로 들으며, 그래 이런 식이라면 나도 둘째는 도저히 생각 못하겠다 말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만만치 않게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이제 곧 17개월이 되어가는 조이에게 하루동안 '사랑해'라는 말보다 온갖 제지와 금지의 말들을 훨씬 더 많이 들려준다. 수도 없이 사랑한다 말하며 '사랑'이란 단어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보단,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며 이것이 '진정 너를 사랑해서'라는 것을 가르친다. 조이는 아직 이 심도 있는 훈육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아이와 몸과 마음으로 씨름하느라 내 몸과 마음은 늘 피로하다.
남편은 하루동안 조이를 보는 시간이 매우 짧은 편이다. 퇴근하고서도 저녁식사 준비를 하느라 더욱이 그렇다. 그렇게 된 연고는 남편이 아이 보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는 데 있다. 물론 아빠가 된 지 16개월이 넘어가니 지금은 어디에 내놔도 훌륭한 애아빠다. 하지만 남편은 원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형인 데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자신의 딸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울고불고하는 걸 견딜 수 없어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온전히 육아를 담당했고, 남편은 퇴근 후 저녁식사를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달려왔다.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아이와 붙어있는 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이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일하고 들어와 쉬지도 못하고 요리를 하느라 몸이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아내가 힘들다 하니 차마 가장의 입에서 "나도 힘들어."라고 말도 못 하고.
정갈한 남편표 밥상
공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4가지 음식을 만들어낸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시간이 왔다. 머뭇거리던 마음을 앞뒤로 툭툭 치고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여보, 이제 당신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조이를 봐줘. 저녁식사는 내가 준비할게. 우리 집 요리사 직위는 오늘부로 끝이야." 급작스럽게 남편을 요리사 직위에서 해임시켰다. 이것은 불가피한 작전 변경이었다.
"... 그래도 괜찮겠어?" 급작스러운 해임 통보에 남편은 살짝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론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그의 몸이 많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잠깐이라도 조이랑 떨어져 있으면 환기가 되고 좋을 것 같아. 그동안 당신을 배려한다고 내가 조이와 계속 붙어있었는데, 이렇게 계속 가다간 난 마음이 힘들고 당신은 몸이 힘들어서 안될 것 같아."
"좋아, 그럼 내일부턴 내가 퇴근하고 와서 조이랑 산책을 나갈게. 그 시간에 당신은 좀 쉬거나 저녁 준비를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럼 내일 저녁 메뉴는 뭐야?"
"음...,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주는 대로 먹었으면 좋겠어."
된장찌개도 제대로 끓일 줄 모르던 남편이 내가 조이를 키우는 동안 종원이 형(백종원), 뚝딱이형(유튜버), 수영이 형(편스토랑 류수영)과 일방적으로 친해지기를 넘어 훌륭한 요리사가 되었다. 그렇기에 사실 남편에게 우리의 작전을 변경하자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겁이 나긴 했다. 1년간 이유식만 만들다 보니 내가 이전에 어떻게 요리를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제 우리의 호화스러운(?) 저녁식사는 끝이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미 선포된 작전은 취소할 수 없는 법이다. 남편이 퇴근을 하면 난 잠시 조이와 떨어져 마음을 환기하고, 남편은 비행하느라 피곤했던 몸으로 요리하는 수고로움을 더는 것으로.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일상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기를 바라며, 우리의 작전 변경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