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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May 27. 2024

이 자리엔 당신과 나, 그리고 꽃게만 있는 거야

우리의 삶에 찾아온 변화


가족구성원이 한 명 더 추가되면서 우리 부부의 삶에는 참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 한 가지를 꼽아보자면 ‘집중력’의 변화이다.



“당신,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집중해서 먹을 수 있는 거야?”


조이의 그 어떤 회유와 꼬심과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게라면을 흡입하는 나를 본 남편은 적잖이 놀란 듯했다. 본인은 자꾸만 조이의 회유와 꼬심과 협박에 반응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신도 하루 종일 이 소리를 들어봐.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남편표 꽃게라면, 정말 맛있다.



나는 원래 집중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나오는 집중력을 보자면, 이전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가히 산만한 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이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도통 나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조이의 낮잠도 이제 하루 1회, 보통 1시간 30분 정도다. 그 시간에는 주로 식사와 뒷정리를 하거나 진행 중이었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깐 쉬곤 하는데,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잠시 쉬려고 온몸에 긴장이라도 풀면 "나 일어났소!"하고 아기새가 소리를 낸다. (지금 이 대목을 쓰고 있는 때도 조이의 낮잠시간이다. 조이가 깨기 전에 한 문장이라도 더 쓰려고 애를 쓰고 있다지.)


그나마 조이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밤잠에 들어가면 좀 낫다. 보통 저녁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육퇴를 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빠르면 8시, 늦어도 8시 30분 즈음이 된다. 남편이 다음날 해야 하는 비행을 준비하러 다시 출근하는 저녁이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저녁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밤 10시에서 10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눕는다.


당연히 조이가 태어나기 전보다 하루동안 내가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 홀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갈망은 나날이 커져만 갔고,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하고픈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그 일에 순식간에 몰두하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조이의 낮잠시간이 시작되자 우리 부부는 조용히 식탁에 마주 앉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각자 휴대폰을 보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시나브로 나에게 서운함이 쌓였다며 우리가 가졌던 쉬는 시간에 대해 남편이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인데도, 당신은 시작한 일이 뭐든 금세 몰두를 하더라, 요즘. 나는 계속 당신을 살피는데, 당신은 당신만의 세계에 들어가 내가 안 보이는 것 같았어."


"그랬어? 그래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네. 난 당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우리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쉬면 되는 줄 알았어."


지나가던 사람이 들었으면, 내가 남편에게 아주 무심한 아내일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대화였지만, 덕분에 우리는 때에 맞는 조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한시라도 빨리 퇴근해서 자신과 시간 보내주기를 바랐던 아내는 이제 남편이 한시라도 빨리 퇴근해서 육퇴가 빨라지기를, 그리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하루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요청하던 남편은 이제 아내와 한시라도 빨리 육퇴 해서 함께 시간 보내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입장에 대해 해명하고 호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이 날 배려한다고 당신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난 알 수가 없어. 그러니 내가 필요할 땐 내가 필요하다고 꼭 말해주길 바라."


나는 남편이 요청만 하면 언제든 기꺼이 남편에게만 집중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물론 남편도 아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홀로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기로 하고 말이다.



"여보, 내 눈을 봐봐. 지금 이 자리엔 당신과 나, 그리고 꽃게만 있는 거야."


그래서 난 남편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꽃게라면에 집중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 엄마 아빠와 놀고 싶은 조이에게 "잠시만 기다려줘."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저녁식사를 마친 후 조이를 재우고, 남편과의 시간도 나 자신과의 시간도 가진 후 긴 밤을 보내고 나면, 조이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줘야겠다 다짐했고.


아기새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고, 남편이 날 언제 필요로 할지 모르고, 내일을 위해 미리 해두어야 하는 집안일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도 조이와 함께 할 땐 조이에게 집중하고, 남편과 함께 할 땐 남편에게 집중하고, 집안일을 해야 할 땐 집안일에 집중하고, 나의 일을 할 땐 나의 일에 오롯이 집중하기.


오늘도 이렇게 마음에 나무를 심었다. 조이와 함께, 남편과 함께, 그리고 나 자신과 함께.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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