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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May 20. 2024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어지는 법이니까

내 마음에 우울이 찾아온 두 번째 이유


“나는 체력이라도 좋으니 오래 버텼지, 너는 체력도 약하잖아.”

“내 말이, 언니. 몸이 힘드니까 마음이 훅 꺼져버리더라고.”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기분전환이 되었다. 주애언니는 대학동기이자 나의 육아선배님이다. 집에서 꼬물거리던 조이를 허둥지둥 키우고 있을 당시, 언니는 종종 나에게 전화를 걸어 “100일까지만 버텨봐. 그런데 100일이 지나잖아? 그럼 난 너한테 6개월까지만 버텨보라고 얘기할 거야.” 등 현실 격려 메시지와 더불어 육아 실전 꿀팁 등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조이가 어느 정도 크자 언니는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왔다. 아들엄마인 주애언니는 언니의 조카딸들의 작아진 옷들을 한 보따리씩 싸다 주었고, 전망 좋은 카페도 데려가 주었다. 작년 말 남편 따라 땅끝 사천까지 이사를 왔을 때도, 언니는 혹시라도 내가 타지에서 육아하다 우울증에 걸리면 어떡하나 하고 안부를 물어줬다. 주애언니는 나에게 우울방지턱 같은 존재다. 음… 아니, 우울방지 요정이라고 하자.


언니의 말마따나 육아 전쟁터에선 체력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나도 잘 버텨왔다. 문제는 버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목이 아프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두통이 찾아온 날 밤엔 내가 정말 힘들다는 걸 두 손 두 발 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속 몸을 쓰다간 정말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렇게 지쳐버린 몸은 마음 주위를 기웃거리는 우울을 막을 힘이 없었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손목이 아프자 난 조이의 몸무게가 조금 늘었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이의 몸무게가 평균보다 적게 나가는 편이라, 매주 월요일 아침 조이의 몸무게를 잴 때면 소수점 아래 자리라도 바뀌었을까 마음이 두근거린다. 물론 아이의 몸무게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내 손목이 시큰거릴 땐 손목에게 미안한 마음이 반, 그리고 조이의 몸무게 증가로 인한 기쁨이 반이다. 그래도 늘어난 조이의 몸무게를 내 손목이 감당할 만큼 적응이 되면,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늘 그래왔다.


어떻게 하면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아이를 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 온 세월이 어느덧 16개월이다. 요령껏 아이를 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언제나 나의 팔 근육과 더불어 복근과 기립근은 세트로 단련 중이다. 16개월이 된 아이를 하루 온종일 들어 올리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어제도 오늘도 9.3kg을 들었다 놨다 하며 틈새 운동 완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조이는 엄마의 손목보호대를 보면 늘 양말을 신듯 신겨달라고 요청한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나의 주 업무가 육아와 집안일인데, 육퇴 시간까지 너무 열심히 일처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특별히 육아와 집안일이 묘하게 섞여 있는 식사 관련 업무 난이도가 제일 높다지.


일단, 조이를 잘 먹여야 한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16개월 아이를 위해, 매끼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조화로움을 고려한 메뉴 선정은 물론이고, 금세 동나는 냉장고를 채우기 위한 휘뚜루마뚜루 요리시간은 필수다. 뒤돌면 조이의 식사시간이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한다. 조이만 식사를 하면 좋으련만 이 애미도 식사를 하니,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내 손목부터 손가락 마디마디가 외친다. "아, 냄비와 웍이 무겁소.", "그릇은 가벼운 걸로만 쓰시오." 식기세척기 이모님을 간절히 모시고픈 나날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역시 다 그런 거였어. 그렇지? 언니랑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해진다."


그래도 우울방지 요정과의 전화 통화 이후 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후련해진 마음이 우울의 강으로 침몰할 순 없다며 지푸라기를 잡겠다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육아와 집안일 업무 범주가 얼마나 다양한지는 차치해 두고, 나는 내 마음에 찾아온 우울이 다시 짐을 싸서 떠나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어지는 법이니까.


일단 우리 집 가장에게 '육체의 피로가 유발하는 우울감'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다. 남편이 당장 신통한 묘책을 내줄 순 없어도 우울감을 밀어내는 '위로'는 충분히 건네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쉬어보자고 아이가 먹을 시판 이유식 반찬을 냅다 주문해 버렸다. '주문완료', 이 네 글자가 주는 희열이란.


엄마표길들여진 아이의 입맛에 맞는 시판 메뉴가 없어 그아침부터 다시 냄비를 꺼내고 웍을 꺼냈지만, 그래도 며칠 잠시 쉬었다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조이가 먹을 양식이 두둑이 쌓인 걸 보니 또 행복해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 코에서 피가 좀 흘렀지만, 밤 10시에 기절해 아침 7시에 일어나는 호사를 누리니 또 행복했고.


"그렇게 행복해진 조이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래, 뭐 별거 있나. 이것이 엄마의 삶이라고, 이렇게 글을 쓰며 힘내보는 거지. 내 마음속 나무를 연료 삼으려고 베어낸 만큼 또 잘 심어보자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리고 내 몸을 위해서도 조금 더 지혜를 발휘하자고, 틈틈이 잘 쉬자고, 다시 시작한 운동도 멈추지 말자고 다짐하며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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