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의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中-
내가 남편을 만날 때도 그랬다. 그 사람을 사랑해서 함께 하고 싶었고 영원을 약속하며 결혼을 했다.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어르신들이 하는 말 중에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렸을 때는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고 나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 집은 비판적인 집안이다. 어렸을 때 시험 점수를 90점을 받아오면 우리 부모님은 맞은 점수보다 부족한 10점에 대해서 더 채찍질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칭찬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우리 집은 내가 성취하고 이뤄 놓은 것들에 대해서 인정을 잘해주시는 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누가 너를 인정해주겠어 등의 비난과 걱정이 섞인 걱정을 하시는 분 들이였다. 일을 다니다가 회사를 관두고 조금이라도 쉬는 날에는 사회적인 루저가 된 것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해서 내가 잘되라고 하시는 이야기였던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댁에 인사를 드리러 방문했었던 적이 있다. 남편은 친척들은 굉장히 형제자매들이 많다고 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친가와 외가가 가까우니 우리가 외가에도 인사를 드리러 가시기를 원하셨다. 남편의 외가 분들은 형제가 8남매인데 그중에 이모들이 6명이었고, 사이가 굉장히 좋아서 왕래가 잦다고 하셨다. 그날 인사를 드리러 가던 날에 나는 문화적인 충격을 느끼게 되었다. 부정적인 우리 집과는 달리 남편과 내가 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순간부터 나오는 그때까지 온종일 내가 들었던 것은 남편에 대한 칭찬뿐이었다.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밥을 먹는 모습도 예쁘고, 성실하게 잘 커서 좋고, 효심이 깊어서 좋고, 결혼을 잘해서 좋다는 등... 칭찬이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외가 분들은 나에게 결혼을 잘했다며 세상에 이런 남편이 없다고도 말해주셨다. 이렇게만 들으면 우리 남편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남편은 그냥 아주 보통의 남자 일뿐이다.
부정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나에게 그날의 일은 적잖이 충격을 받는 사건이었다. 조금 오버를 보태서 말하면 시어머니를 포함한 시댁 분들은 남편이 똥을 싸도 예쁘다 하실 분들이다. 반대로 우리 집은 내가 똥을 싸면 물을 잘 내렸는지, 화장실에 냄새는 다 없앴는지를 물어보실 분들이다. 처음에는 부럽기도 했다. 남편의 수더분하고 착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어디에서 나오나 싶었는데 결국은 가정환경이 그를 좋은 성격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저런 집안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나의 부정적인 성격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주던 사랑을 나에게도 베풀어 주셨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헌신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우리 엄마와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길어지고 시어머니와도 자주 왕래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시댁은 결국 시댁이라는 사실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핏줄은 통한다. 등의 옛 말이 왜 있는지 그리고 시월드라는 말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시댁 분들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다. 하지만 딸 같은 며느리라는 것은 현실에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들 표현하듯이 퇴근해서 온 딸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는 것이 당연한데, 퇴근해서 온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깐 말이다.
다른 집안의 사람들이 만났기에 서로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인 것 같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교류하면서 가족관계를 좋게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과 시어머니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