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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싫지만 사람이 그리운걸

by 순록

#1.

진짜 싫다.

진짜 싫어서 도망을 가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지요?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서 고장 날 대로 나버린 시계를 다시 쓰려고 하면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까요? 우선은 건전지를 바꿔야겠죠. 건전지를 바꿔서 시계가 작동하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시계 몸속 어디 깊은 곳에 있는 부품 탓일 거예요. 어딘가 망가져 버린, 없어져 버린 작은 그것 하나가 시간을 흘러가지 못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당신은 그걸 찾아야 해요.


#2.

이름이 주는 충격이 이리도 큰 줄이야. 수년 전 잊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그래서 같은 이름을 만나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 그 이름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마치 생선을 만진 것 같았다. 잠시 생선을 만졌을 뿐인데, 손을 씻고 또 씻어도 온종일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질 냄새라고 말하지만, 어쩜 손을 잘라버려야 해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3.

그럴 때면 나는 너를 보고 싶어.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어서 주변에 말을 해봐도 내가 살아온 인생을 다 아는 것은 너뿐이니깐.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든. 내가 힘들다 하소연을 하면 넌 나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멍청아. 내가 하지 말랬잖아. 넌 꼭 힘들다고 하면서 인정에 못 이겨서 그러더라. 그것도 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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