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더욱 당신이 생각나는 밤
그 시절 나는 국밥을 싫어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국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그 시절 아버지는 맛있는 곳을 데려간다며 최고의 맛집이라는 말도 함께 덧붙였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기 비린내와 땀 냄새와 술 냄새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일에 찌들어 있는 아저씨들...
어쩜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때의 어린 내가 보기에 할아버지쯤 되시는 분들이 허기짐을 달래러
그리고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인생의 패배자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때의 어리고 당돌했던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맛있었던 국밥이 아니라, 풍경들이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평생직장이라고 자부하며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몇 개월을 집에서 쉬고 있었고,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한동안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지도 대화 한 번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아버지 눈에는 속상하셨던 것일까...
이모님, 여기 국밥 2개 주세요
내가 국밥이 싫었던 이유는 국과 밥이 함께 뒤엉켜 말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도 알 수 없는,
모르고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함께 나오는 반찬 또한 여느 한정식 집에서 정갈하게 나오는 반찬도 아니고
누군가 꼭 한 번은 젓가락으로 집었다가 내려놓은 듯 한 그런 비주얼이 나로 하여금 수저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왜
여기로 날 데려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자리를 일어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아....
내 인생이 돼지국밥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돼지란 동물은 참 착하기도 하지...
제 놈의 살부터 뼈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희생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지의 인생도 이렇게 국물까지 남김없이 유용하게 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네 놈은 이 국밥을 다 먹고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정작 아버지를 짐스러워하고 있는 나에게 야단을 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대답을 할 수가 없어 그저 묵묵히 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체 가게를 나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도 아버지와 같은 부모가 되어 있고,
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자녀에게
나도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국밥집에 들르곤 한다.
여전히 사람이 붐비는 이 곳,
그때 가게를 들어서며 맡았던 냄새는 고기 비린내와 술 냄새가 아닌 듯하다.
그것은 인생의 모두를 희생해온
아버지의 냄새이자,
우리네 아버지의 근심과 한숨 그리고 아직은
남아있는 희망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이리라.
여전히 내게는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그곳이
한 때는 든든한 방패 막이였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짐이라고 느낀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지는 밤이다.
오랜만에 국밥 한 그릇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