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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의 이야기

이래 봬도 나는 얼죽아이다.

by 순록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프림과 온갖 생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많이 마시다가

속이 아프게 된 이후부터 인 것 같다.


직업의 특성상 사람을 계속 만나는 일을 했었다 보니,

카페에서 당연히 시키는 것이 커피였고

처음에는 다양한 종류를 먹다가 탈이 난 이후에는

얼죽아로 정착이 되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혼자 시간을 보낼 때도

나는 당연한 듯이 커피를 마신다.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말이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와 아메리카노의 커피색감은

힐링이 되곤한다.


친구가 어느 날 물어본다.

“그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면,

이제는 원두 맛도 구분할 줄 알겠네?”라고

아니, 못해.


나는 커피를 맛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마시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어색한 자리를 마시고.

지인들의 소식을 나누기 위해 마신다.

또 어떤 날은 우울한 내 분위기를 마신다.

그날의 분위기를 달래거나,

위로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엔 커피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냉동실 한켠에는 무수히 많은 얼음들이

끊이지 않고 얼죽아인 나를 위해서 대기하고 있다.

이정도면 커피는 내 소울푸드쯤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이 밤,

얼음이 다 녹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아가

내 곁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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