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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상.

by 순록

일주일에 하나씩 에세이를 쓰겠다고 다짐을 한지가 어언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분명히 소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 나의 슬픔이다. 역시 아직 멋진 작가가 되기는 틀린 것 같다. 멋진 작가 말고 계속 글을 쓰는 나부랭이라도 되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각종 단상들을 모아보았다.




#1.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존재인 것인가. 노동력을 통해서 서비스나 소산물 또는 가치를 생산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얻고, 사랑을 통해서 결혼에 이르러 아이를 생산해내고, 이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한답시고 각종 취미를 만들어 내면서도 생산이라는 것을 한다. 왜 인간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가. 하긴, 나도 이렇게 월급 루팡을 하면서도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글을 생산해내는 것을 보면 인간이긴 한듯하다. 제발 좀 가만히 좀 있어보자.


#2. 비 오는 날에 친구 녀석의 초1쯤 되는 아들을 데리러 마중을 나간 적이 있다.(참고로 나는 아직 아이가 없는 유부이다.) 초등학교 교문 앞에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우산을 쓰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혹은 같은 학년의 친구 엄마들과 수다를 떤다. 간혹 아빠들도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혹시 몰라 따라갔더니 비가 갑자기 와서 미처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현관까지 와달라는 선생님의 단체문자가 간 모양이다. 그제야 친구가 전화가 온다. "야, 현관 앞으로 가서 기다리래" 현관 앞에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이 모여있다. 1학년 2반이에요 라고 선생님이 외치면 엄마들이 일제히 모여 자신의 아이를 찾는다. 나도 함께 찾는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도 잘 분별이 안되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서 엄마가 쓴 우산 쏙으로 폭 하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내 아들은 아니지만 내 아들은 어디 있나 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둘러본다. 그때, 이모!! 하고 아이가 날 부른다. 친구 녀석의 아들이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그 녀석의 손을 잡고 우산을 씌워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비 오는 날 똑같이 엄마들 틈에서 우리 엄마를 찾던 나는 다른 친구들이 다 가고 엄마를 찾지 못해 비를 맞으며 갈 생각으로 현관을 나섰다. 그때였다. 우리 엄마가 보인 것이, 나도 엄마를 부른다. 엄마!!


#3. 우리 집 강아지는 새침데기이다. 지가 아쉬운 게 있을 때만 안긴다. 다리가 긴 푸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 무릎 위에 올라와서 주인이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평소에도 이름을 부르면 돌아는 보고 근처까지 오기는 해도 와서 안기는 법이 없다. 친구 말로는 그게 주인과의 교감이 없어서 그렇다는데 좀 슬프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무튼 요 녀석이 나한테 안기게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훈련을 시작했다. 간식에 환장하는 우리 강아지를 간식으로 꼬셔서 무릎에 올라올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며칠을 해보니 금세 잘한다. 이로써 나의 작은 욕망이 이뤄졌다. 하지만 내 손에 간식이 없으면 무릎에 올라와 앉았다가도 간식이 없는걸 확인하면 도망간다는 것이 함정.


#4. 이맘때면 꼭 쓰는 글이 있는데 이번에는 쓰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봄에 대한 글이다. 나는 봄에 관련된 시도 좋아하고 글도 좋아한다. 그리고 봄날 같은 사람도 좋아한다. 차갑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따뜻한 사람이다. 예전에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같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전부 열어 보여주고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관계를 맺으니 너무 힘들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왔다가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뿐이었다. 그래서 그 후엔 적당한 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상처를 받아도 될만한 거리 말이다. 서로의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으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이 그것이 퍽 좋았다. 봄날 같은 사람도 그런 의미이다. 그래서 봄을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무튼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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