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ㅣ 프란츠 카프카 ㅣ 열린 책들
팔과 다리, 목에 이어 얼굴까지 온몸에 두드러기의 습격을 받은 날이 있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다음날이었다. 나도 놀랐는데 다른 사람까지 놀라게 해야 하는 부담에 병원에서 받은 약을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공식적으로 학교를 결석할 수 있었던 그날, 병약했던 카프카와의 내적 친밀감이 싹텄다. 요양소에서 20대를 시작할 만큼의 지병에도 불구하고, 보험국 공무원이자 사회주의 서클의 멤버, 소설가로 하루하루를 꾹꾹 눌러쓰다간 사람. 그 특유의 성실함과 소심한 태도를 물려받은 주인공들은 어느 날 아침,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유는 없다. 낭떠러지 같은 그 맥락 없는 지점에서 소설은 바로 막을 올린다. 그들의 충격과 당혹감은 위로받을 겨를조차 없이, 폭격처럼 날아드는 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경악과 분노의 총알받이가 될 뿐이다.
행방불명된 자유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요제프 K는 체포가 이뤄진 하숙집부터 승승장구하던 직장, 수수께끼 같은 법원, 삼촌이 소개한 변호사의 집, 수상한 화가의 작업실,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의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물들을 만났지만 끝내 스쳐 지나갔다. '신뢰할 수 없음'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채, 누구 하나 의미 있는 관계로 붙잡아두지 못하고 끝내 삭막해진 영혼이 되고 말았다. 타이피스트였던 작가의 약혼녀와 공교롭게도 같은 직업을 가진 뷔르스트너 양에게만큼은 진실한 애정을 갈구하는 듯했으나 몇 번의 어긋남 끝에 찾아온 종말의 밤엔 이제 더 상관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다만 K에게 '체포', '소송'이라는 사건이 발발했기 때문에 펼쳐진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이 낭떠러지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30년간, 번듯하게 그러나 황량하게 그를 축적해 온 시간이야말로 오히려 진범이 아닐까.
그렇다면 K를 공허 속에 잠들게 한 '신뢰할 수 없음'의 기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느 날 문득 태어나고, 언젠가 그렇게 떠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정체가 지구인인지 외계인인지는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 밝혀진다. 29세의 카프카는 그가 증오하던 석면 공장의 감독직을 시키려는 가족에 맞서 자살을 생각했다. 최초의 인간관계인 가족이 그 어떤 타자보다 멀어지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외계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세계와의 이질감을 무수히 반복 체험하며 마침내 구축하고만 자기 방어체계, 그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의 철회라면 너무 가혹한 해석일까.
온통 상징과 은유로 조각된 듯한 K의 이상한 나라 속에서 '소송'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을까.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시간의 감가상각 속에서 어떤 사유는 조금씩 부식되고 그 자리엔 새로운 무언가가 스며든다. 어쩌면 그것은 돌연 떠오르는 단 하나의 생각,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가?'라는 자기 의심이 아닐지. 절대적인 기준도, 명확한 실체도 없는 '잘 산다'는 전설적인 감각에 기댄 채, 타인에게 검열당하고 추궁받으며 점차 더 깊은 혼탁한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처음의 K는 소송은 있되 무죄는 없는 배반당한 세계로부터 본능적으로 벗어나고자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셨다. 그러나 중간 너머의 K는 진전 없는 소송의 조바심을 느끼고 어떻게든 최초의 청원서를 작성하고자 애썼다. 그러다 말미의 K는 더 이상 소송과 그 배후를 의심하지도 못할 만큼 일상을 삼켜버린 불합리한 현실에 종속되고 무력해져 버렸다.
그리고 예고 없이 들이닥친 종말의 밤, 31번째 생일 전야의 실크모자 2인을 한물간 늙은 배우들이라 여기던 K는 꼼짝없이 납치되어 근교의 채석장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분신을 바위에 누이고 끝내 칼날을 겨누는 작가의 시선은 무엇인가. 어떤 제사를 위한 희생을 치르는 것일까. 이 세계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자신을 자각하고 조금씩 매일 성벽을 쌓아 올린 사람. 그러나 스스로 창조한 세계의 진위를 의심하다 그만 성이 함락되어 버린, '내가 끝내 나이지 못한 죄'를 받은 것은 아닐까. 나약한 자신을 죽여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의식이 달빛 아래 조용히 거행되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눈길에 붙들린 '양팔을 활짝 펼친 이'는 누구일까.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유'는 실상 바로 그대의 이마 위에 있음을 얘기하던 대성당의 사제였을까. 자신을 찌르는 희생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 카프카의 말년은 순수하고 충만하게 행복했을까. 곧 만날 9월의 프라하에서 그가 내치고 품었을 세계의 풍경들을 가득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