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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May 13. 2023

당신의 비행은 안녕하십니까

「야간비행」ㅣ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ㅣ 미르북컴퍼니


 지난 4월 도쿄행 비행기는 새벽 6시 출발이었다. 세 시간 전, 공항까지 전철 한 정거장 거리의 호텔에서 눈을 뜨고 택시를 타고 조금의 수속을 마치니 어느덧 비행기 안이었다. 그저 나만 깨우면 되는 너무 쉬워진 여행이 있기까지 100여 년 전, 아니 그보다 오래전부터 무수한 젊음들은 추락했고 실종됐다. 시대가 남긴 미지수를 선물로 받고 기꺼이 밤의 하늘을 가르던 사람들. 그 속에 나의 영웅, 생텍쥐페리가 있었다. 하늘 속의 사유를 지상의 글로 담으며 생각과 행동의 시차를 용납하지 않았던, 돈키호테를 닮은 사나이. 밤의 생각을 낮의 행동이 저주하는 탓으로 한없이 게을러진 내게, 그가 내민 얇은 찻잎은 무한한 비유와 상징으로 영영 우려질 것만 같았다.


 첫 잔에 우려진 찻물을 버리니, 잠잠히 떠오른 질문은 '인간이란 과연 개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홀로 태어날 수 없는 존재로 시작된 운명은 부모와 가족, 타인이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관계의 갈망과 절망을 반복한다. 그런데 인간이 맺는 관계는 일대일이기도, 일대다이기도, 때로는 일대무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관계들은 생의 한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인간을 압도하기도 한다. 항로 개발 책임자 리비에르와 신혼의 비행사 파비앵에게 다가왔던 그 순간들처럼. 이토록 극적일순 없었지만 내겐 베트남에서의 지난 2년이 그러했다. 가족이, 회사의 본사가, 국가가 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을 한국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다시 언어와 문화의 미숙아로서 살아가며 코로나라는 외계를 만났을 때, 개인주의자를 자부하던 나 또한 새로운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과 인류가 맺는 일대무한대의 관계는 과연 선택 가능한 것일까. 익숙한 언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조차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이미 그 거대한 시스템을 살아가며 그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질문은 '생각부터 행동까지, 나의 비행은 안녕한가'라는 점이었다. 은밀한 생각의 자유를 탐닉하는 내게 '행동'은 굳이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누군지도 모를 목격자를 만드는, 책임져야 할 부담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영정 사진 전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것처럼 비겁한 양심은 때때로 울었다. 나만의 '생각'이란 고요한 비행 속에 잠식되고 고립될 것인가, 길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행동'이란 항로 개발의 도전을 이어나갈 것인가. 오직 그 끝에만 존재하는 일대일의 관계라는 목적지는 여전히 안녕할 것인가. 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글'이라는 비행만큼은 두려워말고 맘껏 해보자는 생각이 일었다.


 마지막 잔에 담긴 풍경은 베트남 남단, 푸꾸억의 해 질 녘 바닷가였다. 굳이 바다 앞에서 파도소리 가득한 넥스트의 '더 오션'을 들으며, 슬플 땐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던 어린왕자의 문장을 곱씹고 있는 청승맞은 내가 보였다. 어린왕자의 마흔네 번 노을 관람 기록을 깰 순 없었지만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질' 거라는 목소리를 무한 반복하던 실연 후의 며칠이었다. 생텍쥐페리호로 다녀온 충동의 야간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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