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ㅣ 버지니아 울프 ㅣ 열린 책들
의식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이토록 촘촘한 호흡은 소설이라기엔 연극에 가까웠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촉수의 예민함과 민첩함은 어디로 튈지 모를 핑퐁의 운동을 닮았다. 그것은 한 인물이 타인에게 보내는 관심과 반응의 포물선이었다가, 이내 시답지 않은 자기 일상의 사소함으로 급하강하다, 언제나의 고민으로 돌아와 뫼비우스 띠 모양을 그리며 뜸을 들였다. 그러다 또 다른 인물의 행동과 표정, 말 하나에 담긴 역사를 펼치며 현재의 장면 사이로 과거와 미래를 공기처럼 흘려보내니, 어쩌면 버지니아 울프의 시간은 3차원을 넘나들며 세상에서 가장 더디게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독자로서 체감한 인물의 수는 배가되었으나 이 군상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 두 집단이 자꾸만 떠오른다.
램지 부인, 그녀는 빛을 주는 등대다. 자신이 가진 모든 빛을 발산하며 바다의 어둠과 정적을 물리친다. 타인의 결핍이 안쓰럽기에, 어울림의 기획과 실행을 도맡아버리는 강인한 관계 지향의 에너지를 품었다. 그러나 이타적 삶의 고단함 속에서 그녀는 소모된다. 파티가 끝나고 아이들이 잠든, 남편이 고독으로 회귀한 늦은 밤의 틈에서야 비로소 자신으로 안식했다. 그리고 그녀도 등대를 그리워했다. 점점 빛을 잃어가는 자신을 비춰줄 또 다른 등대를. 진실로 내가 살아보지 못한, 램지 부인과 같은 이들의 삶에 감히 공감할 순 없었다. 그저 나와 다른 에너지를 가진, 태생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램지 부인이 바닷가에서 쓰던 무수한 편지는 말한다. 나도 내게 말을 걸고 싶다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신을 줄여가며 주변과 세상의 빛이 되는 존재들. 그들의 어둠은 누가 비추나.
그녀의 대척점, 혹은 그 사이에 있는 램지와 찰스, 카마이클, 릴리는 빛을 받는 어둠이다. 타인에게 미숙하며 자신에게 익숙하다. A부터 Z까지 누군가에게는 의식되지도 않을 어떤 계단을 서성인다. 하루하루 전진하지 못함에 고뇌하지만 아예 그 계단을 벗어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존재를 지울 만큼 짙어진 어둠 속의 그들을 램지 부인은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이 부담스러워할지라도 무리 속으로 끄집어내고, 한 마디의 다정함을 기다렸다. 그런데 비극은 등대의 빛을 받는 어둠이 자신을 비추는 등대가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둔하다는 것이다. 어둠들의 삶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것은 괴로움과 기쁨의 현장, 그 '계단'이고 닿을 수 없는 그 끝이 전설 속의 등대다. 이미 실존의 등대가 그들을 떠난 지 10년 뒤에야, 램지와 릴리는 램지 부인을 추억하며 그녀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어둠들도 영원한 것일까. 계단을 향한 과몰입이 빚은 황폐한 일생. 그의 유작이 확률 게임으로 또 다른 시대의 누군가에게 빛이 된다면, 그는 어둠일까 등대일까.
결국 단 하나의 삶은 없다. 우리는 모두 어둠이자 등대, 등대이자 어둠이다. 다만 시차를 두고 서로를 비출 뿐. 그러니 불완전한 서로의 불가결을 상기하며 결핍을 채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으니 고민이다. 기록화폐를 매개로 전시되고 중계되는 삶이 도처에 가득하고, 더 많은 삶이 그들의 빛에 홀린 채 물끄러미 그저 바라보고 있다. 그 경로에 잠복 중인 AI라는 등대지기까지 생각하니 아득해지다가 문득 생각한다. 가시권이 넓어질수록 정작 내 주변의 그늘을 놓치고 있을 수 있음을. 전설 속의 등대보다 가까이의 등대에게, 그의 바지런한 활기와 수고에 감사하자. 그리고 받은 빛을 돌려줄 수 있는 등대가 되자. 기왕이면 이 생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