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로 다시 읽는 안데르센의 [엄지공주]
하반기 고과 최저 등급. 이것이 그간 무수한 야근과 초과 업무에 대한 두꺼비의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은 물론이거니와, 언제나 본인 업무를 칼 같이 잘라내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를 외치던 동기 미꾸라지에게까지 깔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보다 못한 점이 뭘까, 어떤 성과가 문제였을까 스스로를 갉아먹던 중, 술자리가 파하고 언제나 만취하던 두꺼비를 집까지 바래 주던 이가 다름 아닌 미꾸라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심야에도 왕복 1시간 반은 족히 나올 거리를 매번 팀을 대표하여 다녀왔으니 얼마나 위대한 희생인가. 직장에서의 일은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로 구성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다 됐니’라는 한 마디에 답하기 위해 퇴근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꺼지는 컴퓨터를 좀비로 만들며 내달리던 열정은, 별안간 갈 길을 잃었다. 시대정신에 맞게 누구도 직접적으로 시키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흘린 땀 방울이 그저 휘발되는 것은 아닐 거란 믿음이 흔들렸다. 정의와 신뢰의 성이 허물어지고 질투와 불신의 바다가 범람하던 내 세계는 흡사 피카소의 그림처럼 왜곡되었고 그 속의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렇게 존재감을 잃어가던 나를 신생 부서로 이동시킨 건 풍뎅이었다. 풍뎅이는 임원의 욕받이가 되어버린 두꺼비와 달리, 모두가 주시하는 떠오르는 실세였다. 너라면 잘할 것 같아서 데려온 거야. 별 볼일 없어 보이던 내 앞날에 날개가 돋는 듯한 그 순간의 달콤함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 덕분에 입사 6년 만의 첫 해외출장을 경험했고, 그곳에서 오늘날의 그를 만든 근성의 실체를 마주했다. 3박 4일의 길지 않은 일정은 낮에는 시장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밤에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때마침 현장에 온 대표에게 보고하는 고강도의 훈련이었다. 그런 악착스러운 일정 관리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쉼 없이 몰아치는 릴레이 보고와 동기부여가 다른 유관부서, 이해관계가 상충된 관계사까지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은 도저히 힘에 부쳤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며 나를 독려하던 그도 실망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나와 경쟁관계에 놓일 동료들이 충원되었고 우리는 각기 다른 풍뎅이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다 함께 타 들어갔다. 번 아웃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떠올릴 때쯤, 보람과 성취의 섬은 멀어져 갔고 위선과 탐욕의 늪은 나를 잡아 삼킬 듯 높이 솟아올랐다. 충동적인 쇼핑이 부쩍 잦아졌고 카드를 긁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환상에 젖었다. 리볼빙의 쳇바퀴 속에서 후회와 공허함이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풍뎅이는 진급하고 나는 다시 한번 유급하던 시절 또 다른 실세 들쥐를 만났다. 풍뎅이가 개미였다면 들쥐는 베짱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들쥐의 여유로운 겉모습 뒤엔 사실 풍뎅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인맥을 관리하고 선물을 투자하여 정보를 쌓아가는 바지런함이 감춰져 있었다. 다양한 사교 모임과 새로운 바를 탐사하느라 바쁜 그였으므로 세세한 업무를 챙길 수는 없었다. 무한 믿음과 책임주의로 업무 권한을 이임해주었으며 엉망이 될지라도 어쨌든 혼자서 끝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그만의 업무 방침을 익혔다. 그 과정에서 쌓여버린 갈등이 폭발할 무렵,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하는 들쥐는 타 부서의 편에 서서 그간의 내 보고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평화주의자가 되곤 했다. 회사에는 적이 있으면 안 된다는 명언과 함께.
들쥐가 지향하는 바쁘지만 평화로운 세계에 적응할 무렵, 그는 내 직장생활 최대의 제안을 했다. 우리는 다 같이 두더지 랜드로 간다. 이곳과 달리 아직 만만한 곳이니 충분히 선점해 볼 만하다고.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이미 나를 둘러싼 풍경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았다. 더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이는 이곳의 지리멸렬함 속에 질식될 것 같았다. 차라리 그곳에선 뭔가 달라질지 몰라. 거짓말처럼 신기하게 아직 모든 것이 시작 단계인 두더지 랜드에서 나는 잠시나마 평안함을 느꼈다. 더 이상 내가 작아 보이지 않았고 뭘 하든 부담스러울 만큼 주목받는 안락한 세계였다. 경쟁이 사그라진 그곳엔, 그러나 자유도 흐려져 갔다. 낯선 다수 속의 소수인 나를, 어디선가 지켜보는 듯한 시선에 갇혀버리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망망대해의 끝을 발견한 트루먼의 당혹감이 나를 잠식해왔다. 그것은 또 하나의 가상 세계였다. 화려하지만 순간뿐인 시한부 같은 신기루에 눈이 멀까 불안했다.
불안. 그것은 먼지처럼 작아진 투명인간의 공허함을 느낄 때에도, 돋보기 아래 놓인 듯한 위태로움에 휩싸일 때도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때마다 난 그 불안의 출처를 내 주변 환경의 불온함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이 속에 머물고 있다. 내 존재의 무게와 크기를 끝없이 의심하면서. 지난 몇 년간 숨 가쁘게 스쳐온 풍경 속의 두꺼비와 미꾸라지, 풍뎅이와 들쥐, 그리고 두더지 랜드. 그들은 과연 실존하는 세계였을까. 흔들리던 내 손이 잘못 누른 셔터에 우연히 붙들린 환상이었을까. 때로 날 살게 한 동력이었지만 끝내 확신할 수 없었던 모든 변수들을 지워낸 이곳엔, 결국 '나'라는 하나의 상수만이 남는다. 이곳도 저곳도 아니라면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오직 나만으로 충만할 수 있는 그곳은 어디인가. 나의 제비, 아직 저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 본다. 우리, 한번 더 날 수 있을까.
추락이란 사실만으로도 버거웠던 그날의 난 제비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도, 여력도 없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민 조직에 감사했고 실세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 그의 후광을 이용하고 생존법칙을 터득하여 어느 날의 내 미래도 그려보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던졌던 내 방 한 켠의 떨리는 그림자를 보지 못한 건 아니다. 넌 왜 더 버티지 못한 거야, 왜 떨어져서 나를 창피하게 한 거야. 실패에 대한 원망이 상처에 대한 책임을 앞섰다. 그렇게 긴 외면과 단절의 시간에도, 그러나 제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그에게 다가갈 시간이다. 아스라이 달빛이 비치는 내 조그만 방에 촛불 하나를 켠다. 스스로 이유가 될 것, 自由. 자신을 태우며 빛이 되는 그 황홀함 속에서 참 오래도록 잊고 있던 자유를 기억하자고, 제비에게 속삭인다. 그의 곁에서 점점 노곤해지며 그려보는 새로운 비행의 끝엔, 더 이상 내 불안을 종식시켜줄 왕자는 없다. 더 이상 작아지지도, 커지지도 않은 채 본래의 나를 오롯이 지켜내는 또 다른 내가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