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부재

내 인생에는 없는 '남자'

by 란님


'아빠와 딸의 관계가 딸의 남자관계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다. '딸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난다'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자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 삶에는 남자(아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딱 세 부류였다. 새아빠나 의붓오빠들처럼 '가족'이거나, 동문동창처럼 '친구'이거나, 아니면 일을 같이 하는 '동료'. 그 외의 남자는 불편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누군가 다가와 가까이 지내면 주위에서 관심을 갖고 놀려대니 불편해졌다. 이미 내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사람은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필요 없다'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원래 없던 존재라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니 애써 찾지도 않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고백을 해오면 만나보기는 했으나, 그들의 감정은 '내가 생각한 사랑'만큼 깊지 않았기에 늘 실망하고 말았다. 사랑은 함께한 시간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내게 사랑은 '당위'였다. 내가 좋으면 끝까지 무조건 사랑해야 마땅하다 생각했다.


꼬여버린 감정의 근원을 나는 아빠의 부재에서 찾는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야 했다. 아빠는 나를 찾으러 와야 했다. 그래야 마땅할진대 아빠는 계속 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에 분노하며 마음이 뒤틀렸다. 아빠 따위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등을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되었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이유 없이 끝없이 사랑해 주는 존재(아빠)가 필요했다. 세상의 절반이 남자인데 나는 그 절반과 건강하게 교류할 기회를 잃었다. 사랑의 이유를 말하면 가짜 사랑 같아 보였다.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으면 믿음이 안 갔다. 상대방들도 그냥 미완성인 어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호감이 생긴 사람이 있어도 다가설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이를 만나 행복해져야 했다.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아직 나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다는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다, 처음부터 깊 사랑 따위 있을 리가 없는 것을.


부모의 이혼과 아빠의 부재를 겪고 자란 나에게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사랑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내 가족을 떠나지 않을 사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처음부터 부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아빠는 내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 이혼하고 집을 나가셨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아빠는 벌이도 없으면서 사업을 하겠다며 비싼 차를 타고 다다고 한다. 정에서 해주신 서울 시내 아파트를 날려 먹고 빚쟁이들이 엄마의 직장까지 쫓아오게 만들었다고 한다. 시댁(아빠의 본가)은 꽤 부자였지만 둘째 아들인 아빠에게 돌아올 몫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신 못 차린 아들이 밑 빠진 독이라 판단하신 건지 도움을 전혀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엄마는 아이를 생각해 참아 보았지만 "그 주제에" 바람까지 난 것은 참지 못하셨다. 아빠와의 결혼생활 이후, 엄마는 키 크고 잘생긴 남자는 실속이 없고 바람기가 많다는 편견을 갖게 되셨다.


이혼 후 우리 삶 속에 없던 아빠는 내가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일 때 갑자기 학교로 찾아오셨다. IMF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우리 집(엄마의 재혼으로 만들어진 가족)은 이사를 했데, 주소 이전 사실을 통해 사정이 어려워진 것을 파악한 아빠가 걱정이 되어 찾아오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궁금할 때마다 한 번씩 초본을 떼어보셨던 것 같다.


아빠는 엄마가 재혼하여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우리를 찾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다 상황이 어려워진 것 같으니 구해주러 나타난 것이었다. 문제는 아빠도 엄마도 이미 각자의 가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빠의 의도가 어떠했든 아빠는 우리를 구해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보호자는 새아빠였고, 아빠의 부양가족은 새로운 가족이었으니 말이다. 아빠는 너무 늦게 오셨다.


양쪽 가정의 허락하에 아빠와 우리는 번을 만났다. 못해준 게 많아 아쉬우셨는지 우리에게 갖고 싶은 것을 묻고는 같이 가서 사주셨고, 쓸 일도 없는(친구들 중 휴대폰 있는 애들이 없었다) 휴대폰도 가장 비싼 모델로 사주셨다. 아마 언제든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의미였을 테지만, 나는 새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빠의 전화번호도 저장해두지 않았다. 력이 나빠져 자꾸 인상을 쓰는 나에게 안경을 맞춰주신 것도 아빠였다. 엄마와 새아빠는 그런 세세한 변화에 관심이 없었다.


한 번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아빠와 아빠의 배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두 분이 함께 맛있는 걸 사주시고 보고 싶은 공연을 보라며 용돈도 주셨지만, 아빠의 배우자 입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의 존재가 반가울 리 없다. 역시 그 아주머니를 실제로 보게 되니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후로 아빠와 만나 않았 것 같다.


잊고 지낸 아빠가 다시 내 삶에 나타난 것은 내가 21살 대학생이 되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있을 때였다. 런던 시내 중심가에서 기념품 쇼핑을 하고 있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화가 나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언니가 혼자서 빈소에 다녀왔다고 한다. 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처음 보는 고모가 연락을 해오셨다. 아빠에게 빚이 있으니 상속포기를 하라며 사인을 요구하셨다. 사실이든 아니든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사인을 하고 돌아왔다. 나는 아빠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상속은 된다는 사실이 웃겼다. 상속 따위 필요 없었다, 나에게는 살아있는 아빠가 필요했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지만, 아빠에 대한 기억조차 외면하고 한참을 살았다. 엄마와 새아빠가 이혼하신 다음에야 나의 죄책감도 사라져 아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설움이 풀릴 때까지 아빠를 원망하며 오래오래 못되게 굴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없다. 이제는 진짜로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한동안은 원망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써서 태우기도 했다. 어느 드라마에서 보니 돌아가신 분께 닿으려면 태워야 한다고 해서 따라한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아빠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것이라 나를 보러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위패가 모셔진 절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빠가 나를 찾지 않아도 내가 찾아갈 곳이 생겼다.


엄마가 최근에야 들려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아빠는 내가 다섯 살 무렵 그려준 그림을 10년 넘게 간직하시다가 중학생이 된 우리를 만나러 올 때 들고 오셨다고 한다. 지갑에 넣고 다녀 꾸깃꾸깃했다던 그 그림을 차라리 내게 보여주셨더라면 마음이 풀렸을 텐데, 엄마에게만 보여주셔서 지금껏 몰랐다. 부모가 되고 보니 그 그림을 담고 다니는 것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 같아 더 울컥하게 된다.


아이들이 생긴 지금 내가 가장 아쉬운 것은 아빠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나쁜 놈이었을지라도, 내게는 하나뿐인 아빠이고 유전적으로 우리 아이들과 이어지는 분이신데, 아는 게 너무 없다. 심지어 사진도 한 장 없다(엄마는 아빠와 이혼한 후 아빠가 등장하는 모든 사진을 버리셨다). 고모에게 연락해보려 했으나 이미 전화번호도 지워진 지 오래였다.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때가 오면,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키 크고 잘 생겼고 머리 좋고 매너 좋고 목소리도 좋은 분이었다고, 좋은 점을 잔뜩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 이야기가 구전이 아니라 나의 직접적인 기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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