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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열타자기 Jun 18. 2016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

THINK TANK THINK (18)



사진 출처 : <무한도전> 방송 캡쳐


1

얼마 전 윤태호 선생님이 <무한도전>에서 일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가 맡은 일, 내가 속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먹고사니즘’을 위해 달린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 헬조선이라는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와 분위기 속에 우리의 일상을 온전하게 지켜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은 더 많아지고 시간은 없는데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상을 희생하며 지금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삶과 행복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2

누구나 힘든 사연들이 있지만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일찍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다. 나이답지 않게 또래들 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어 20살 때부터 항상 쫓기듯 경주마처럼 달려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르바이트부터 지금의 밥벌이까지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을 찾아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만 잠깐이라도 멈추면 생계에 타격이 생기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작은 휴식이나 여유조차 주지 못하고 살아왔다. 후유증으로 만성 번아웃 증상과 약간의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3

힘든 상황에도 나를 지탱하게 해준 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비교적 일찍 하고 싶은 분야의 경험을 했고,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 괜찮은 성과들도 있었다. 당장은 힘들고 불행하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것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힘든 상황들을 잠시나마 마취시켜 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4

경쟁이 치열한 필드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다보니 타고난 재능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상쇄하고자 몸부림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급기야 일과 삶을 구분이 뒤엉키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하는데 여우에 쫓기는 토끼처럼 실체 없는 불안과 다급함이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더 치명적인 진실은 노력 역시 한계치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5

이런 상태로 오랜 시간을 살다보니 삶과 일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법을 배우지 못했고 가족, 친구, 연인을 챙기는 것이 미숙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먹고 사는데 온 총력을 기울여야 이 상태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나의 부족한 능력, 거기에 저성장 시대와 헬조선이라는 외적 상황들이 겹치고 일상의 행복이 오랜 시간 일상을 행복을 누리는 법을 잊어버리면서 나를 지탱하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사라진지 오래다.      


6

내가 하고 있는 외주업의 특성상 자존감이 점점 낮아지고 대표라는 직책의 무게 역시 나를 짓누른다. 그나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으로 버텨왔지만 노력만큼 금전적 보상이 따라주지를 못하고,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고, 내가 지켜내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훨씬 좋은 (상황의) 사람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지금의 희생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은 미래라는 명목으로 일상을 좀먹어가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학대가 아니었을까.


7

많은 돈을 벌어도 일상이 무너지면 앞으로도 절대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시간이 행복감과 만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물론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선순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 동안의 삶이 피폐해지고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돌이켜본다. 이제라도 바로잡고 균형을 맞춰보고자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지. 더 불행해지기 전에. 


최창규 (THINK TANK Contents Director & Founder) : https://www.facebook.com/cckculture

THINK TANK Contents : http://thinktankc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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