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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Sep 11. 2018

UCLA 신경정신과 입원 4-10일차

Every little thing gonna be alright

 글쎄,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 다른 어느 것에도 신경 쓰지 못했다. 낮에는 짝꿍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풀러 다니느라, 저녁에는 면회를 가느라, 하루가 금방 가버렸다. 짝꿍의 여동생 집에서 머물다, 지금은 어머니 집에서 머물고 있다.


 짝꿍은 그동안 계속해서 우울증 치료제의 작용과 부작용 사이에서 부단히 줄다리기를 해왔다. 기존에 복용하던 약에서 Prozac(Fluoxetine)으로 변경하며 20mg(Paroxetine의 10mg과 비슷한 효과)으로 시작하였고, 종국에는 40mg 복용량으로 늘어났다. 사실 우울증 치료제의 효과가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므로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존 Paxil(Paroxetine)이 너무 큰 부작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그 정도만 아니면 된다는 심경이었다. 물론 소화불량과 설사라든지 두통 등은 정도를 왔다 갔다 하며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 여러 다른 약들을 복용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끔찍한 수준의 정신적 폐해로부터는 벗어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무엇이 먹고 싶냐 해도 잘 모르겠다, 퇴원을 하는 게 신나냐 해도 그렇게 신나지도 않는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퇴원, 그렇다 퇴원을 앞두고 있다.


 병원에 상주하는 소셜워커가 8월 말일자로 만료되어 버린 짝꿍의 보험사로부터 이번 입원 건에 대해 보험 보장을 약속받아주었다. 새로 보험에도 가입하며 가장 걱정하던 문제가 풀렸다. 소셜워커들은 그에 따라 짝꿍이 퇴원 후 지속적으로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주었다. 적절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사를 찾아 배정해 주었고 첫 약속도 잡아주었다. 그러니 이제 안정하며 짝꿍이 완전히 좋아질 수 있도록 가족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기존에 도시로부터 조금 멀었던 거주지에서 이사를 결정하였고, 짝꿍의 외할머니와 할머니가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 도시에 사시니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매우 급한 결정이 내려졌다. 바다와 가깝고, 편의시설이 주변에 많으며,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짝꿍이 보다 편한 마음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끔은 무슨 죄를 지어서 나는 이러고 있는가? 하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고,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 후회스러운 적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으로 고통받아온 짝꿍을 생각한다. 나조차도 이렇게 버겁다면 짝꿍은 어땠을까, 어떨까. 낯선 땅으로 온 나를 위해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주고 싶었을 테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이리저리 일이 어그러지는 것을 보며 아마 나보다 더 조급하고 힘들고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다 무너진 듯하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이제는 보험 문제도 해결되었고, 세금 보고 문제도 해결되었고, 덕분에 내 서류도 마침내 완성될 수 있을 듯하다. 몇 개월을 둘이서 깔고 앉아 뭉개고만 있던 것들이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이 와중에 나도 이 나라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실수가 없으리라.


 병원에서의 일상이 지루하다고 심심해하면서도, 막상 퇴원을 앞두고는 되려 잔뜩 가라앉은 짝꿍을 바라본다. 걱정이 된단다. 모든 것들이. 그래도 어쩌겠나. 부둥부둥 해서 끌고 가야지.


 오히려 이번에 이 일을 겪으면서, 짝꿍이 늘 외로워하고 여러 사건들을 지나며 가족들과도 멀리 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가족들은 짝꿍이 더 다가와 주길,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길 바라며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세상이 꽤나 처참하고 다소 의미가 없다 느껴지더라도 단지 그런 나의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 삶이 완벽할 필요도 없고 그냥 짝꿍만 있어주면 된다는 것도 말이다. 뒤돌아봤을 때,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들어 가도록 하자고. 그러니 기대해 달라고. 지금 짝꿍을 데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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