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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Sep 19. 2018

UCLA 신경정신과 퇴원 그 후

Everything came back much worse

 퇴원하는 짝꿍을 데리러 가던 날, 잔뜩 신이 난 것은 결국 나뿐이었다. 마주한 그의 얼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해변가의 레스토랑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먹는 점심에도 그의 가라앉아 어두운 표정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물었다. 지금 어떠냐고.


 간밤에 자다 말고 심하게 욕지기를 느껴 깼었다고 했다. 그게 그냥 일회성이거나 감기가 오는 건가 생각했는데, 왠지 프로작의 부작용이 점점 강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단다. 그리고 나름 열흘간 지내며 다른 환자들과도 조금씩 관계성이 맺어지던 중이었는데 앞으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될 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혹시 자신이 너무 빨리 퇴원하는 건 아닌지 싶단다. 결국 바뀌는 보험을 UCLA 신경정신과에서는 취급하지 않고, 기존에 해지된 보험사가 보장한 기간보다 입원이 길어지면 커버를 해주지 않을까 봐 복잡한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자신을 밀어낸 건 아니냐 했다.


 우리는, 아니다, 거기 소셜 워커들이 보험사 커버가 안 되면 기부 케이스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고, 결코 환자를 보험 처리나 비용 지불 가능성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니 믿고 향후 팔로우업 절차를 따르자고 설득했다. 글쎄, 결과적으로 짝꿍의 의문이 맞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 후 많은 일들이 수틀렸다.


 병원에서 말해주지 않은 것들


 퇴원한 그 날, 우리는 짝꿍에게 인터넷 접근을 하는 게 옳은 걸까 하다 그에게 폰을 돌려주었다.


 결국 그가 첫 번째 발견한 것은, 프로작이 팍실에 비해, 메스꺼움, 공황장애 등이 더 높은 비율로 발생한다는 비교 논문이었다. 두 번째는, 기존에 복용하던 팍실의 체내 반감기가 18시간 정도인 것에 비해 프로작은 4-6일에 달한다는 정보였다.


 거의 분노에 가까울 정도로 흥분한 짝꿍은, 분명히 시간이 갈수록 부작용 증세가 강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라 말했다. 두통, 복통 설사, 수면 장애, 공황 장애, 손발로부터 타는 듯한 느낌, 무엇보다 절망적인 우울 증세로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지는 것에다 더하여 기존에는 없던 메스꺼움까지 겪고 있다고. 반감기를 고려하면 아직 체내 체류 약물 수준이 절정에 치닫지도 않았으니 그때까진 더 강해지기만 할 거라고. 그러고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증세를 낱낱이 설명해 왔는데도 병원에서 그것들을 고려해 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며 절망스러워했다.


 우리는 이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유감이라고, 그래도 노력해 보자고. 곧 이틀 뒤, 신경정신과 예약이 잡혀있는 참이다. 지금 겪는 것들 잘 설명하고 논의해 볼 수 있으니 기다려 보자며 다독였다.


 다음 날, 그는 한 가지 정보를 더 찾아냈다. 병원에서는 프로작 복용량은 팍실 복용량의 2배와 같다고 설명해 준 참이다. 예컨대, 팍실 10mg은 프로작으로 20mg를 복용해야 같은 효과를 본다고 말이다. 그러니 기존 짝꿍이 복용하던 팍실 30mg은 프로작으로 60mg 수준이라 이해시켰고, 퇴원 시점에 짝꿍은 프로작 40mg 복용량을 확정받았었다. 그런데 그가 찾은 논문 자료에는 프로작 40mg은 팍실 34mg 수준이라고 되어 있었다. 평생 먹어오던 양보다 이제는 더 많은 복용량이니 부작용도 더 크게 찾아올 거라 거의 두려워하고 있었다.


 물론, 확증 편향이 아닐까 싶긴 했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으니 아마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더 눈에 들어오겠지. 그렇지 않은 자료도 있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그런 사고의 흐름에 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그에 반하는 자료들을 들고 와 반박해 보려는 시도가 과연 옳을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대신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 자체를 달래 보려 애썼다.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단 하나 붙들고 있던 희망은, 곧 정신과 의사와 면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약된 시간에 UCLA 병원에서 지정해 준 병원으로 갔다.


 짝꿍이 구글에서 평가를 보더니, 'Horrible place' 라며 평을 읽어 내렸다. 어머니에게 온갖 약물을 다 처방해 그녀의 인생을 망쳐놨다거나, 지나치게 바빠서 환자에게 진정한 케어를 해주지 못하는 곳이라거나, 보안요원들이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든지 등의. 나는 아냐, 우리한테는 좋을지 어떻게 알겠냐고 최대한 긍정적 해석을 전하려 애썼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첫 예약은 대략적인 스크리닝 시간이었다. 예민한 질문들이 이어져 보호자이지만 나 역시도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 예약을 잡을 때 도로 함께 했다. 당황스럽게도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은 세 달에 한 번, 심리치료는 한 달에 한 번 씩이란다. 지금 막, 자살 충동의 우울증으로 입원했다 나온 환자인데 저 수준의 케어가 적합하다는 걸까. 그래도 일단 잡아보자 했는데 남은 슬롯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무슨 3주 뒤 날짜를 불렀다. UCLA 병원에서 나오며 2주 처방만 받았으니 그전에 날짜가 없겠냐 하니, 너네 운이 좋다며 당장 내일 취소된 슬롯이 있으니 거기에 넣어주겠다 했다. 불행 중 다행이구나 했는데, 결국 그 역시 불행 중 불행이 되었다.


 다음 날, 예약 시간에 가 만난 정신과 의사는 나이가 89세였다. 사실 의사 이름으로 찾은 정보에 그렇게 적혀 있던 걸 보긴 했지만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실이었다. 그녀는 손에 힘이 없어서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할 정도였다.


 우울증 치료제 브랜드명인 프로작, 팍실이 아니라, 성분명인 플루옥세틴, 파록세틴이라고 하니 알아듣지도 못했다. 귀가 어두워 General doctor를 chiropractic doctor라고 계속 듣질 않나. 20대 후반에 안면 비대칭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을 연유로, OCD 관련 저명한 의사로부터 Body dysmorphic disorder(신체 변형 장애) 진단을 받았고 그때 SSRI 계열 약물 복용을 제안받았다는 말을 했더니, 아니 무슨 의사가 환자더러 너 얼굴 비대칭이라고 진단을 내리냐며 자기가 볼 땐 그 어느 누구보다 평행인 것 같은데 라며 실소를 터뜨리는 게 아닌가. 뒤에 가만히 앉아, 묻고 싶던 질문을 적어온 내 수첩을 바라보며 나는 그 질문지가 오늘 더 이상 쓸모가 없음을 뼈 아프게 깨달았다. 가족사에 얽힌 상처에 대한 언급에도 매우 부적절한 방식의 코멘트를 하는 등, 제발 누군가는 그녀에게 은퇴하라 말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e-prescription도 하지 못해서 상담시간 중 20분을 그 처방전 쓰는 데에 쓰더니 결국 처리를 해주지도 못했다. 간호사로부터 간단한 문진을 할 동안 서면 처방전을 써준다더니 결국 그것도 주지 않아서, 모른 채 운전으로 20분 거리 약국까지 열심히 갔다 도로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나마 처방전은 글씨 쓸 손 힘이 없으셔 지렁이 기어가는 아이들 필체라 약국에서 받아주려나 우려스러울 정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또 있었다. 통제 약물인 클로노핀은 별지에 써줘야 하는데 일반 양식이라며 처리가 불가능하다 했다. 결국 병원에 전화를 하고, 또 하고, 또 해서야 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멀쩡한 나도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답답하고 화가 날 정도였다. 진짜 황당하지 않냐며 웃어버리고 싶었는데, 농담 같은 이런 상황이 제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지금이지 않은가.


 She is so crazy.


 그냥 이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절망의 그림자가 짝꿍에게 결국 드리웠다. 병원에 따져 다른 정신과 의사로 변경하고, 다음 예약을 최대한 빠른 날짜에 잡아 달라고, 정말 오늘 시간 낭비였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 첫 예약은 90분, 그 뒤로는 30분짜리로 잡히는데, 새 의사와 90분으로 잡아달라 요청했건만 그나마도 10월 10일에 30분 약속을 주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희망이여 다시 한번


 그 말도 안 되는 89세 할머니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 이후 짝꿍은 거의 황폐화되어 있다. 온갖 심각해진 부작용을 홀로 힘겹게 감당하며 짜증과 분노, 무력감 사이를 하루 종일 오갔다. 계속해서 읊조릴 뿐이었다.


 I don't understand why they released me so soon.


 자신이 그렇게 모든 것을 드러내고 의료진들에게 두려워하고 걱정되는 것들을 다 설명했는데, 결국 그냥 내쫓아 그 모든 것들이 다, 더 크게 돌아오도록 방치한 게 아니냐 했다. 환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말이다. 입원을 더 오래 유지하며 치료를 더 받은 뒤 나왔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UCLA 신경정신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전환된 새 보험을 그곳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응급실로 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병원을 찾아 입원 시도를 해야 하는 걸까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카운티에서 지정한 병원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만큼 맞았으니 그 계통 병원을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다.


 UCLA 병원에 다시 입원하고 싶은 것은 알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쥔 선택지들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부디 버텨달라. 내가 꼭 해결하고야 말겠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사실 나도 자신은 없다.


 다행히 근처에 좀 더 의료진이 나아 보이는, 갈 수 있는 병원이 있는 것 같아 그쪽으로 시도해보려 한다. 이번에는 잘 되어야 할 텐데. 이쪽 제도를 완전히 모르니 혹시 그냥 풀 페이를 해서 상위 보험을 가입하고 UCLA 병원을 다시 시도해 볼 수는 없냐니 그렇게는 안 될 거란다. 답답하다. 한국 의료 제도는 참 좋은 거구나 하는 걸 느낀다.


 침대에 누워 정신의 감옥에 갇혀 고통에 그야말로 몸부림치는 짝꿍을 본다.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고, 몸서리를 치며 끙끙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몹시 힘이 든다. 아니면 홀로 의자에 앉아 말도 없이 정신의 감옥을 배회하며 온갖 나쁘고 부정적인 생각 속에 갇혀 나올 길을 몰라하는 그를 도울 길이 없다. 게다가 잠도 제대로 잘 못 자고, 계속해서 소화 장애로 설사를 겪고, 손발이 타는 것 같다 말하고, 두통으로 힘들다 하고, 공황 장애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불안해하고, 메스꺼운 데다 식욕 자체가 없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갖 나쁜 생각과 싸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도 크나큰 고통이다.


 짝꿍의 가족들과 긴밀히 연락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대한 짝꿍을 바쁘게 해 나쁜 생각만 하는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해 오던 명상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특히 운동과 햇볕을 쐴 수 있게, 할 일을 부여해 하루가 그래도 의미 있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다. 꾸준히 동기 부여를 해주려고 돌아가며 대화하고 연락해 주고 있다.


 어둠만이 내리깔린 생각들 속에서 짝꿍을 끌어내려 애써보지만 짜증 섞인 반응들을 마주하며 가끔 그만 하고 싶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온갖 치료제 부작용 그리고 우울증이라는 엄청난 녀석과 싸우는 본인만큼 고통스러울까 하며 버텨본다. 매일 어떻게든 해변으로 끌고 가 달리고 걷기를 했다. 그나마 생기가 돌고 단 1초라도 미소 띤 모습을 보며 나는 더 크게 웃게 된다. 앞으로 그 미소를 더 길게 볼 수 있을까. 마침내 그의 정신에도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내가 알던 그는 언제나 배려심 깊고, 진중하며, 생각 많고, 똑똑한, 멋진 사람. 무엇보다 내가 어둡고 힘들었을 때 빛이 되어 위로가 되어준 그런 사람. 그러니 지금은 내가 그 역할을 해줄 때다.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사이. 그는 삶에 의미가 없다 하고, 앞으로 희망이랄 게 있냐 물어 나를 허탈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우리를 의미로 삼고, 그를 희망으로 보려 한다.


 그러니 희망이여, 다시 한번, 와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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