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에 남들보다 빠르게 수업 들어보기
입학하기 전에 미리 학점을 채울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학원을 안 다니는 대신 수많은 학교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던지라 큰 망설임 없이 신청했던 것 같다. 대학교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렇게 '파이썬 프로그래밍'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대학 생활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첫 단추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친구를 사귀기 위한 모임은 많은데 왜 하필 수업이었냐고? 번개모임이나 새내기 배움터 같은 모임은 술을 위해 모이는 느낌이 강해서 어린 마음에 거부감이 들어 참여하지 못했다. 입학할 때에는 대학은 '상아탑'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정확한 의미는 몰랐고, 그냥 고고하게 학문을 하는 장소라고 믿었던 정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뭐든 원리원칙과 맞아야 하고, 본질적이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애늙은이 소리 듣고 자란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내 잣대를 들이댄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스스로 지키고 싶었던 원칙이 있었을 뿐.
수업은 조별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강사님께서 전공별로 조를 짜 주셨다. 컴퓨터 수업이라 대부분 전자 컴퓨터 전공일 줄 알았지만 오히려 비전공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포함하여 컴퓨터 전공자는 다섯 명! 빨리 친해지라고 점심시간 직전 팀을 나누어주셨다. 그렇게 팀별로 조금은 어색한 첫 점심식사를 했던 것 같다.
첫 끼는 중국집! 구성원 중 한 명은 여학생이고, 한 명은 한 살이 많은 형이었다. 출신 지역이랑 학교 이야기를 했었는데 포항 한 명과 구미 한 명, 나머지는 학교가 있는 지역 출신이었다. 간단한 호구조사와 수시/정시 출신 여부, 생일 이야기 등. 요즘은 첫 만남에서 MBTI를 묻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지역 출신 모두가 학구열이 높은 동네 출신이라 다들 근처 학교를 나왔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전공이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졌고, 약 한 달가량 각자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전까지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이후에는.. 각자 살 길을 찾아간 것 같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강의를 들으러 돌아오는 길에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추가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장학금을 등록금의 70% 지급하겠다는 내용. 장학금을 그만큼 받아도 장학금 없는 국립대 등록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응 안가. 더 입학 성적이 높은 학교에서 추가합격 통보가 나왔더라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과거 사실에 만약은 없으니까.
강의 제목과 다르게 파이썬 자체에 대한 학습은 많이 하지 않았다. 초반에 기본 문법 약간 따라 해 본 정도. 주로 컴퓨터 교양 수업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컴퓨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파이썬이 오래된 언어가 아니라서 특히 국내에 정보가 부족하지만 수년 이내에 엄청나게 널리 쓰일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외에도 컴퓨터 업계는 매우 빠르게 바뀌므로 기민하게 외국의 자료를 먼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덧붙이셨다.
강사님이 농담으로 본인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가 10년 뒤에 유망한 직종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본인의 전공 분야를 컴퓨터로 정했다고 하셨다. 강사 생활을 수십 년간 하면서 지금 우리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아직도 컴퓨터가 5년 뒤 유망한 직종이라고 언론에 나온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다. 우리 졸업할 때까지 '3년 뒤 유망 직종'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5년으로 줄어든 것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덧붙이셨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주로 영화에 나오는 기술 분석하기나, 엔트리로 중등학교 수학을 학습할 수 있는 강의 자료 만들기와 같은 실습을 진행하였다. 가령, 팀별로 토의를 통해 '스타워즈'에 나오는 BB-8의 구동 원리에 대해서 분석해서 자필 보고서를 작성해보는 과제를 수행하였다. 또한, 당시 역주행 밈으로 사랑받았던 '돌려 돌려 돌림판' 등을 활용해서 교구를 제작해보는 등 재미있는 개발 결과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성적은 B+를 받았다. 뭘로 평가를 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정 중에 중요한 것 아니라고 하시면서 10분도 안 주고 A4용지에 쪽지시험 하나 쳤던 걸로 등수를 매긴 것 같다. 그거 외에는 정식으로 제출한 것이 없었으니까.
성적은 신청하고 싶은 사람만 신청해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촌 누나에게 물어보니 나중에 평점 관리를 정말 공들여서 할 거라면 버리는 게 맞지만, 그냥 신청해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이라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다고. 첫 성적이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A+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결과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일 겸 그냥 성적 인정 신청을 했다. 초반에는 평점 평균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지만 학년이 쌓이면서 이것 하나로 아쉬운 상황이 나온 적은 없어서 그럭저럭 만족했다.
여기서 세 가지 정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대학 생활에서 성적은 1순위로 둘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점.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은 아니다. 성적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게 맞지. 그것보다 다양한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고, 성적 한번 잘못 나왔다고 일희일비하거나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포함한다.
다음으로, 교수 재량 평가는 정말이지 설명이 안 되는 공포 그 자체라는 점. 분명 중요한 시험 아니랬는데 그거 하나로 수업 전체에서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평가되고 재단되어버리는 현실이 씁쓸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성적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평가를 통해 얻어진 결과가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물론 현재 시스템에서 등수를 매기고 성적을 산출해야 한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인정한다. 하지만 평가를 위한 평가가 주류가 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사람. 학교에 적응할 때 까지는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낸 것 같다. 대학교에 가면 학업으로부터의 해방일 줄 알았는데 이 공대라는 것이 자꾸만 선을 넘었다. 밤새 해야 할 과제에 하루 종일 수업. 단체 채팅방에 힘들 때마다 "집 가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등등 칭얼거림을 서로 털어놓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마음을 터놓은 대화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점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생활 패턴이 달라 연락은 뜸해졌지만, 대학 첫출발을 함께할 친구들이 있었기에 아주 조금은 더 수월하게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조금은 이상한 마인드셋을 설정한 상태로,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글 쓰면서 들은 노래]
SMILEY - YENA
Circles - Post Malone
세 번째 글! 그리고, 드디어 대학 생활 이야기 첫 글이었는데 너무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쓰다 보니 말도 거칠고 읽기 편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좀 더 공들여서 퇴고도 여러 번 하고 더 예쁜 글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다음 주에는 새내기 배움터 이야기나 입학식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