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싸움에서 제대로 패배한 회식 날
본부 회식이 잡힌 날이면
사람들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평소에는 6시 땡치면 컴퓨터 끄던 사람들도
일이 좀 남았다며 느릿느릿...
이유는 뻔하다.
일찍 가봐야 좋을 것 없기 때문.
회식 장소로 일찍 출발하신 윗분들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기 때문이다.
<미생>이나 뭐, 여러 직장 드라마를 보면
회식 때마다 대표님 옆에 앉으려고 직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나는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야망이 없기는 했다.
승진이 좀 늦어지면 어떠랴.
오늘은 제발 구석에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술 마시다가 조용히 사라지자,
본부 회식 때마다 늘 바라고 또 바랐다.
어르신 훈화 말씀 들으면서 각 잡고 앉아 술 마시기란
어른 공포증이 있던 내겐 야근보다 더 피곤한 일이었으니...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가 팀장이 되고,
일종의 작은 윗사람 역할을 맡고 나니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테이블 자리 배치 때문에 입구부터 술렁이는 분위기를 윗분들도 다 알고 계셨을 텐데...
망설이거나 빼는 일 없이 어르신 앞에 앉는 일은
아부가 아니라 그냥 예의의 문제였다.
어떤 사람의 앞자리를 일부러 피하지 않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
그런 의미에서 난 참 예의 없는 인간이었다.
20대 시절의 나를 돌이켜보면,
꽤 싸가지 없는 여사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내 발걸음은 대표님 앞자리보다는
그늘진 구석탱이로 향할 것 같다.
운 나쁘게 대표님 앞자리에 앉은 날엔
비싼 안주로 위안 삼겠지...
그래, 회니까, 고기니까 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