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었음을 절감할 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소속된 곳이 없다는 것.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던 한 아이가
처음으로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는 일.
앞의 꾸밈말 싹 덜어내고 그냥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심플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일.
언뜻 보면 마냥 자유롭고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끔은 이 사회가 날 따돌리고 업신여긴다는 기분도 든다.
표현도 어쩜 그리 밉살스러운지,
'국민연금 가입 자격 상실'이라며 날아온 우편물.
내가 원해서 가입했던 것도 아닌데
막상 '넌 자격 상실이야'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하물며 신용카드 가입, 대출 신청이야 말해 무엇하리.
바깥세상은 냉정하구나,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는구나,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꼭
'내가 왕년에 뭘 했는데~'로 시작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나간 과거를 끌어다가 현재를 설명할까?
그런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겠더라.
수십 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가 갑자기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그분들이 느꼈을 당황스러움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
할아버지들은 일하지 않는 자신, 직업이 없는 자신을 소개하기가 영 어색하신 게다.
'안녕하세요.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꽤 멀다.
지금 난 두 번째 문장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꾸밈없이 나를 소개하는 일.
안녕하세요. 지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