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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Sep 14. 2021

유리잔의 물 비우기

통증 역치에 대하여

한창 병원 쇼핑 다닐 때 의사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통증 역치'라고, 통증을 유발하는 최소한의 자극을 수치로 나타낸 표현이다. 그 단어 뒤에는 늘 '통증 역치가 너무 낮습니다.'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쉽게 말해서 남들은 9 정도 자극에 통증을 느끼는 데 반해 나는 1의 자극에도 통증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그때는 그런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란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구제 불능의 몸 상태로 규정하는 듯하여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면서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통증 역치가 너무 낮다.’는 말은 곧 ‘통증 역치를 올려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한 정형외과 의사가 목 디스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목 디스크가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랜 세월 누적된 문제가 교통사고로 전면에 드러난 것뿐인데 그것도 모르고 교통사고 탓만 한다나. 본래 건강했던 사람은 교통사고 한 번에 목 디스크가 바로 생기지는 않는단다.


나도 비슷한 사례였다. 두통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자타 공인 약골이었던 나. 운동이라고는 회사 출퇴근하며 잠깐 걷는 게 다였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턱 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유행 따라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우러 가서는 ‘왜 돈 주고 얼차려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회의를 느낄 정도로 운동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고개를 휙 돌릴 때 뒷골이 빠직하는 몸의 신호를 받았을 때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맥락도 없이 갑자기 이명이 들려서 당황한 적도 있지만, 이 역시 금세 사라져 무시하곤 했다.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방전이었다. 예쁘게 차려 먹고, 예쁘게 꾸미고 사는 일도 다 에너지에서 나온다. 내게는 그런 데 쏟을 만한 에너지가 도저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도 부족한 에너지를 닥닥 긁어서 돈 버는 일에 몽땅 써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다닐 땐 멀쩡하다가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두통이 시작된, 이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에너지를 쥐어짜야 했던 회사를 그만둔 후에라야, 에너지란 녀석도 마음 놓고 바닥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에너지의 바닥, 그게 누군가에게는 목 디스크일 테고, 누군가에겐 두통일 테다. 이런 걸 두고 통증 임계점에 다다랐다, 혹은 통증 역치가 낮아졌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두통이 좀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 그대로 반응이 왔다. 일례로 차를 몰고 산에 오르다가 절벽으로 떨어질 뻔한 적이 있는데, 한동안 괜찮았던 이명이 다시 심해지는 현상을 겪었다. 아마 건강한 사람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 몸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가장 약한 부위 쪽으로 바로 신호를 보냈다. 


그때 생각난 말이 ‘통증 역치가 너무 낮습니다.’였다. 깜짝 놀라기만 해도 이명이 오는 몸. 마치 물이 가득 찬 유리잔 같았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떨어지면 바로 넘칠 기세로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리는 유리잔. 바로 나였다.


덜어내고 싶었다. 한가득 채워진 물을 버리고 빈 잔으로 다시 서고 싶었다. 아니, 유리잔 따위는 치워버리고 큰 항아리로 변신할 수만 있다면 더 좋겠다. 쏟아지는 빗물도 다 받아낼 수 있는 커다랗고 튼튼한 항아리.

그 뒤로 나는 ‘유리잔의 물 비우기’와 ‘유리잔을 항아리로 바꾸기’를 모토로 생활하고 있다. 통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통증 자체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통증을 느끼는 나의 몸 상태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통증이 오면 ‘유리잔에 물이 가득 찼구나. 비워줘야지.’ 생각한다. 평소에는 틈틈이 항아리를 빚는다. 유리잔을 항아리로 바꿔치기할 그날을 위해서다. 


유리잔의 물을 비운다는 말은 예민해진 신경을 부드럽게 달랜다는 뜻이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활동, 자율신경의 조화를 이루고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유리잔을 항아리로 바꾼다는 말은 한마디로 통증 맷집을 키운다는 뜻이다. 체력을 키우면 똑같은 강도의 통증도 좀 버틸 만해질 것이다. 좋은 음식과 운동으로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그 두 가지 미션, ‘유리잔의 물 비우기’와 ‘유리잔을 항아리로 바꾸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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