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씻고 매일 다시 태어나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배변 활동 후의 몸 상태가 다르다, 두 번째는 급한 문제가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심리가 다르다, 여기에 세 번째로 ‘샤워하기 전과 후의 몸과 마음이 다르다.’는 의미를 추가하고 싶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으며 가만히 서 있을 때, 누구나 조금씩은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감정을 느낀다. 마치 따뜻한 물줄기가 그날의 피곤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것 같다. 피곤, 우울, 짜증, 슬픔 등이 모두 물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침이라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저녁이라면 하루를 마무리할 여유를 얻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다행히도 물에 잘 녹는 성질을 지녔다. 비단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마음을 정화한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대신 그와 비슷한 몸의 활동, 즉 ‘몸을 씻는 행위’에 적용해 직접 경험해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샤워하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깨끗해진다고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단순할수록 본질에 더 가깝기도 한 법이다.
심하게 아프던 시절에 꿨던 꿈 하나가 기억난다. 온통 흙투성이인 아이 세 명을 씻기는 꿈이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아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걸 보며 꿈속의 나는 말했다.
“아, 시원해.”
그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을까? 무의식 속의 상징체계를 분석할 재간은 없지만, 실제로 머리가 심하게 아플 때 샤워하면 조금이나마 괜찮아지곤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샤워했다. 머리와 몸 위로 물줄기가 흘러내릴 때면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딱히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어디 가서 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그 사람은 샤워할 때만 안 아프고 다른 시간은 줄곧 아프다고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의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최근에서야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몸과 마음은 가까운 친구 사이 같아서 서로를 따라 하고 싶어 한다. 몸이 하는 짓을 마음이 따라 하고, 마음이 하는 짓을 몸이 따라 한다. 게다가 둘은 많이 닮기까지 했다. 우선 매일 오염된다. 그래서 매일 씻어야 한다. 이 말을 달리 생각하면, 매일 제대로 씻기만 하면 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음을 씻는 일은 어렵지만, 몸을 씻는 일은 쉽다. 옷을 벗고 샤워기의 물줄기 아래 서기만 해도 절반은 한 셈이다. 아팠던 부위를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 물줄기에 마음도 편안해진다. 촉촉한 물방울들이 ‘지금은 괜찮아.’ 속삭이는 것 같다.
그다음엔 약간의 정성이 필요하다. 비누 거품을 내서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진다. 몸의 감각을 활짝 열고 물의 감촉과 비누의 향기를 느낀다.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로션도 바른다. 나와 내 몸의 가장 가까운 교감이 벌어지는, 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
나는 샤워기의 물줄기가 몸에 닿는 감촉도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한다고 믿는다. 부드러운 거품으로 내 몸을 어루만지는 행위 역시 신경을 달래주는 탁월한 방법이다. 좋아하는 향기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가히 내가 내 몸에 베푸는 최고의 서비스가 아닐까?
최고의 서비스를 받은 몸은 신이 나서 반짝반짝 윤을 낸다. 이어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축 처져 있던 마음에도 어느새 윤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산책하러 나가볼까, 재미있는 영화라도 볼까, 예쁜 옷을 입어볼까, 하루를 맞이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언급했듯이 몸과 마음은 가까운 친구 사이라 몸이 기분 좋으면 마음도 기분 좋다. 몸을 씻으면 마음마저 깨끗해진다. 그래서 만사가 귀찮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것이 바로 샤워다.
한 심리학 교수가 말하길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잘 씻지 않는 태도라고 한다. 씻기도 귀찮은 상태라고 할까? 그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 아래 설 수 있다면, 매일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그들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몸 구석구석을 닦아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샤워에는 숨겨진 효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뇌에 휴식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휴식 시간이라면 TV 앞에 편히 앉아 쉬는 시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TV 시청은 뇌에는 휴식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밀려드는 정보를 흡수하느라 더 바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의미의 ‘뇌의 휴식 시간’이다.
요즘 사람들은 늘 바쁘다. 이것 하면서 저것도 해야 하고, 저것 하면서 이것도 해야 한다. 멀티 플레이어, 멀티태스킹이 환영받는 세상. 전화 받으면서 동시에 이메일 쓰고 오늘 점심 메뉴도 생각한다. 너무 바빠 쉬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한 가지 일만 주어지면 오히려 지루해서 견디질 못한다.
식사 시간만 해도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밥만 먹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혼자 먹을 땐 TV라도 켜야 하고 유튜브라도 봐야 한다. 밥을 오물오물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과정에 집중하며 식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샤워는 다르다. 샤워 시간에는 오롯이 샤워만 한다. 한 여자 가수가 샤워하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고 고백해서 경악한 적이 있긴 하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샤워하는 그 순간만큼은 샤워에만 집중한다. 아무 생각 없이 샤워에 몰두하는 그 짧은 시간, 뇌는 비로소 한숨 돌리며 미뤄왔던 일을 한다.
샤워하면서 갑자기 괜찮은 아이디어나 도저히 생각나지 않던 영화 제목이 퍼뜩 떠오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남편은 샤워할 때마다 어린 시절에 불렀던 동요를 흥얼거린다. 모두 샤워하면서 뇌에 휴식 시간을 준 덕분에 벌어지는 일이다.
뇌가 쉬는 시간에만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퍼즐 맞추기다. 공부 시간에는 정보를 수집하고, 쉬는 시간에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퍼즐 맞추기를 하는 시스템이다. 퍼즐이 딱 들어맞는 순간, 뇌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의식 위로 메시지를 올려보낸다. 그 배우 이름, 그 영화 제목, 어린 시절 좋아했던 동요, 도저히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의 결말까지.
꼭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저 샤워하는 그 잠깐만이라도 잡생각 없이 단순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이 소중한 시간을 ‘대충 몸만 씻는 행위’ 정도로 허투루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을 샤워로 시작한다. 아침부터 피곤한 저질 몸뚱이도 샤워만 하고 나오면 에너지로 넘친다. 오늘 하루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샤워를 끝내고 화장실을 나올 때의 나는 분명 화장실 들어갈 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샤워기의 물줄기는 매일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축복의 세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