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온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는 유치원생도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느리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산 정상에 먼저 오른 거북이, 자신의 실력만 믿고 자만하여 우승을 놓친 토끼. 이 둘의 이야기에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은? 맡은 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어릴 적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북이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잠든 토끼를 깨우지 않고 살금살금 지나갔을 거북이를 상상하니 ‘진심 이기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거북이는 바다생물이란 점이 새삼스럽다. 애초에 산에 오를 수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바닷가 모래사장도 아니고 산이라니, 바다생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교훈이고 뭐고 끔찍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무거운 등껍질을 짊어지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기어오르는 거북이. 무사히 내려올 수나 있었을까? 험준한 산세가 연상되면서 동물 학대라는 생각마저 든다.
애초에 거북이는 왜 토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힘든 고행이 눈앞에 그려지는데,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얄미운 토끼를 이겨보고 싶어서? 토끼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자존심 상해서? 명예욕 때문에? 인내심 테스트? 이유야 어찌 됐든 거북이가 선택한 길임은 분명하다. 조용히 바다로 돌아가거나 밤새도록 산에 오르거나, 어느 쪽이든 거북이의 자발적 선택이다.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니 불교의 가르침 하나가 생각난다. 따르지 말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는데, 하나는 감각적 기쁨과 저속한 행복 추구, 또 하나는 한심하고 자발적인 고행이라는 것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감각적 기쁨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은 알겠다. 그런데 한심하고 자발적인 고행이라니? 스스로 선택한 고행인데, 그 앞에 ‘한심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에서도 어떤 고행은 한심하다고 정의 내린다. 따르지 말아야 할 극단이란다.
거북이의 산행을 ‘한심한 고행’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많은 사람들이 거북이의 성실성을 찬양하지만, 그것이 진짜 배울 만한 미덕일지는 의문이다. 목숨 걸고 산에 오르는 거북이의 성실성을 닮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조용히 바다로 돌아가 거북이다운 삶을 살겠다. 바닷속을 성실히 헤엄치겠다.
현실에도 거북이와 같은 케이스가 많다. 인고의 세월 끝에 정상에 오른 사람을 ‘인간 승리’라며 거북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고의 세월이 긍정적인 성장을 동반했다면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고의 세월 탓에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경우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내가 그런 케이스였다. 바다거북이 아주 기를 쓰고 산에 올랐더랬다. 토끼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고, 바다에서 겨뤄보자고 당당하게 내 주장을 펼치지도 못했다. 무조건 참고 견뎠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뭐였는지는 충분히 설명했으니 생략하겠다.
요즘 MBTI가 유행이라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해서다. 내가 거북이인지, 토끼인지, 그것부터 파악해야 바다로 갈지 산에 갈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게 좋겠다. 싫어하는 쪽에서 멀어지고 좋아하는 쪽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짜증 나는 회의 시간이 끝나면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쉰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되도록 메일로 소통하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만나서 수다를 떤다. 불편한 모임이 있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잠시 거리를 둔다.
갑자기 잠수를 타거나 사직서를 내라는 뜻이 아니다. 무례한 사람과 드잡이 하며 같이 싸우라는 뜻도 아니고, 솔직해지겠다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라는 뜻도 아니다. 포인트는 적당한 선, 무리하지 않는 선이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다. 애쓰지 않는 범위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일상 곳곳에 세팅해둔다. 내 경우는 아침 산책, 동네 카페에서 마시는 아인슈페너 한 잔, 시장 구경, 재미있는 드라마, 남편과의 대화 등이 그런 것들이다.
지금 힘들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기를. 혹시 바다거북이라면 산으로 가는 발길을 돌려 바다로 가자. 바다에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해질 무렵에는, 가끔 하는 육지 체험도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