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땐 왜 안 아플까?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의 세계
척추관 협착증을 앓던 엄마, 두통 환자인 지인 몇 명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이 있다.
“신기하게 밥 먹을 땐 안 아파.”
처음 이 말을 들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일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겪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다. 하루 종일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시절, 거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 밥 먹을 때와 샤워할 때였다. 하루 중 식사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 식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시간만큼은 덜 아팠기 때문이다.
밥 먹을 시간이 아닌데 머리가 아프면 간식을 먹거나 껌이라도 씹고는 했다. 어떤 날은 껌을 너무 많이 씹어서 턱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진심으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진짜 왜, 밥 먹을 땐 안 아프거나 최소한 덜 아픈 걸까? 물론 구토 등 소화불량을 동반하는 편두통 환자, 와인이나 매운 음식 등을 먹고 두통이 더 심해진 케이스는 예외로 한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 즉 자율신경의 세계다. 자율신경은 인체의 호흡, 소화, 순환, 체온, 대사 등의 많은 영역을 관장하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땀 흘리고 싶다고 해서 땀을 흘리거나, 자고 싶다고 해서 바로 졸리지는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는데, 이 둘의 관계는 시소 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교감신경이 오르면 부교감신경이 내려가고, 부교감신경이 오르면 교감신경이 내려가는 식이다. 여기서 교감신경은 위기에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타입, 부교감신경은 휴식을 원하고 에너지를 비축해두려는 타입에 비유할 수 있겠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긴장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몸은 바싹 움츠러들면서 위기에 강한 녀석인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 원시시대로 따지면 야생동물이 눈앞에 있을 때와 비슷하다. 우선 혈관이 수축되고 침이 바싹 마른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은 확장되며 간에서는 글리코겐을 분해해 힘의 원천인 포도당을 혈액으로 내보낸다. 야생동물이 덮치기라도 하면 재빨리 도망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먹는다면 체할 확률이 높다. 인체 입장에서 보자면 위기의 순간에 음식을 먹는 행위는 대단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교감신경은 소화관의 운동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토요일 저녁 식사 시간이라면 어떨까? 쫓아오는 사람만 없다면 인체는 자연스레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심장은 천천히 뛰고, 침이 원활히 분비되고, 소화기관은 제대로 된 연동운동을 통해 음식물을 소화시킨다. 밥을 다 먹고 소파에 앉으면 슬슬 눈이 감기고 졸리기 시작한다. 음식물이 소화되는 동안에는 부교감신경이 계속해서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이완된 상태’란 바로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나자 ‘밥 먹을 땐 덜 아픈 이유’의 답을 알 것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밥 먹는 동안에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였다. 더불어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전혀 위기 상황이 아닌 평상시에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나친 경쟁이나 긴장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들 역시 교감신경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회사 다닐 때 동료들끼리 ‘이벤트가 없는 것이 이벤트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어야 ‘이벤트’라고 할 텐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날이 오히려 드물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위기의 순간을 자주 겪다 보니까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는 버릇이 생겨버렸고, 이 버릇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통’이라는 진짜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긴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건대 나의 ‘두통’의 원인은 긴장감의 만성화, 달리 말해 좀처럼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결과로 두통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더 긴장하고, 부교감신경은 계속 힘을 쓰지 못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해도 나의 의지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부교감신경이었다.
그러나 밥 먹을 땐 달랐다. 마음먹기로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 밥을 먹으면 달라졌다. 오물오물 음식물을 씹기 시작하면, 부교감신경이 깨어나 침이 분비되고 소화기관이 움직이고, 인체가 휴식과 에너지 축적 모드로 들어가 나른해진다. 그 결과 뜻밖의 효과를 얻었으니 통증의 경감이었다.
‘밥을 먹을 땐 덜 아프다’ 이 말은 곧 ‘부교감신경이 우위가 되면 덜 아프다’라는 말과 같았다. 나름의 답을 찾았으니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다.
부교감신경의 활성화!
그러나 애꿎게도 이 녀석은 내 의지로는 움직이지 않는단다. 마음먹는 정도로는 부족할뿐더러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말을 듣지 않는 쉽지 않은 녀석이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관계로 나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방향은 잡았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