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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온다 Jul 14. 2022

코로나 시대의 러닝 1

2019년의 어느 날이었다. 불현듯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스쳤다. 전반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달리기는 나의 종목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00m 달리기 기록은 21초였고(구씨는 12초랬나...) 체력 측정 때 오래 달리기를 하면 목에서 피맛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헬스장을 다니면서도 러닝머신에서 실제 '러닝'을 한 건 드물었다. 경보를 했을 뿐. 다른 나라(특히 유럽)에 갔을 때 시내 곳곳에서 러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도 '대단하다,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었지 내가 저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일단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집 근처에 한강과 안양천이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훌륭한 러닝 코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왔으나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뛰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뛰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확실하게 머릿속에 들어있던 생각 하나는 '전력질주는 하지 말자'는 것. 달리기에 소질이 없는 초보자가 처음부터 무리해서 뛰면 관절도 상하고 중간에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경보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쿵쿵거리지 말고 최대한 사뿐사뿐 뛰어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첫날 정확히 몇 km를 뛰었는지, 기록이 얼마 정도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3~4km 정도를 뛰었을 테고 30분 정도 걸렸겠지. 지금 나의 러닝 상황을 보며 왕초보 때를 유추해본다.(지금도 초보긴 하다.) 기억이 나는 건 뛰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다. 


'생각보다 할 만 한데?'


그랬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조금 덜 힘들었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성취감이 훨씬 컸다. 또 하고 자꾸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러닝에 갑작스럽게 입문했다. 3x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어려워진다는데, 그렇다면 그 장벽을 하나 넘는 셈이었다. 야호! 


첫 러닝 이후로 한여름 전까지, 두어 달 동안 시간이 되면 달리러 나갔다. 엄청 규칙적으로 스케줄을 정해서 뛰진 않았는데 대략 통계를 내면 주 2회는 뛰지 않았나 싶다. 5월에는 초보 주제에 호기롭게 서울신문 마라톤대회 10km를 신청해서 비를 맞으며 상암동 하늘공원 일대를 뛰었다. 첫 마라톤 대회 참가였는데 우중 러닝이라니. 그런데도 어찌어찌하여 완주를 해냈다. 기록은 1시간 4, 5분 정도였고 걷지 않고 뛰어서 끝냈다. 여자 참가자들 중엔 거의 딱 중간 정도의 기록이었다.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았달까. 나름 초보의 성공이었다. 쉬지 않고 10km라니.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러닝에 재미가 붙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딱 30분. 앞뒤로 스트레칭 및 준비 시간, 샤워 시간 등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1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끝. 시간 대비 효율이 최고인 운동이 아닌가 싶었다. 헬스장에 가는 것도 좋아했지만, 헬스장은 한 번 가면 운동시간만 1시간 2, 30분 정도에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집까지 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투자하는 시간이 2시간이 넘어갈 때도 많았다. 러닝은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고 그냥 집에 들어와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면 끝이니, 아니 이렇게 시간 절약이 되는 운동이 있다니.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허허허허.


설렁설렁 퇴근 후 뛰면서 그 해 11월 초엔 JTBC가 주최한 10km 마라톤에 또 참가해서 완주를 해냈다.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서 마포대교를 건너가 공덕역 즈음에서 회귀해서 돌아오는 코스였다. 마포대교를 뛰어서 건너다니. 그 또한 재미진 경험이었다. 기록은 비슷했고 또 여자 참가자 중에서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다. 전문적으로 러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 단축을 위해서만 뛰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즐겁게 하는 게 목표이기에 기록에는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놀랐던 건 생각보다 정말 러닝 인구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여의도공원은 알록달록한 복장의 러너들로 가득 찼다. 정말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장성규 씨가 식전 행사의 사회도 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개그맨 박나래 씨가 참가해서 뛰었다고 한다. 완주는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2020년이 왔다. 역병이 창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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