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온다 Jul 14. 2022

코로나 시대의 러닝 2

역병이 오기 직전의 겨울, 호기롭게 동네에 새로 생긴 헬스장을 방문해 1년 회원권을 결제했다. 아주 시원하게.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야외 운동이 쉽지가 않아졌다. 러닝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때였다. 조끼에 장갑에 이것저것 많이 껴입고 뛰어도 봤으나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 자체가 잘 먹어지질 않았다. 마침 그때 거대한 체인망을 가진 헬스 업체가 동네에 개업을 했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등록을 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전 세계에 역병이 창궐했고 헬스장 및 실내체육시설은 우후죽순 스러져 갔다. 물론 회원권은 무기한으로 연장을 해주긴 했고, 원한다면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할 순 있었지만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상황에서 땀이 나고 숨이 차오르는 헬스장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운동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면서 '확찐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정도였다. 마스크를 철저히 끼고 말이다. 집 근처에 한강과 안양천이 있어서 산책할 수 있는 좋은 루트가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


봄이 오자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코로나 초반에는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게 쉽지가 않았다. 이제는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일단은 마스크를 쓰고라도 뛰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안양천에 운동하는 사람은 많았다. 다들 마스크를 꼭꼭 쓴 채로 자전거도 타고, 걷고 뛰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숨이 차면 마스크를 내렸다 올렸다 했다. 마스크를 끼고 러닝이라니. 역병은 정말 많은 삶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었다.


전문적인 러닝화도 하나 장만했다. 러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발이라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좋지 않은 신발로 뛰어보면 안다. 그게 발에 얼마나 무리를 주고 무릎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전년도 두 번의 마라톤 참가로 득템한 러닝 티셔츠도 번갈아 입고 나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아이템을 장착하니 뛸 맛도 더 났다. 스마트워치도 샀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이것저것 많이 산 것 같네?) 러닝 기록을 측정하고 싶은데 핸드폰을 매번 들고 뛰려니 왜 그렇게 무겁고 귀찮은 걸까. 팔에 거치대를 차고 뛰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폰은 그냥 집에 놔두고 시계만 차고 나가려고 6개월 할부로 결제 완료.


그렇게 코로나 시대에 러닝을 다시 재개했다. 시간 되는대로, 5km 정도씩, 너무 빠르지 않게. 마스크는 썼다 벗었다 하면서.(정말 마스크는 극혐 of 극혐) 대충 몇 번 뛰어보니 평속이 나왔다. km당 6분 10초에서 20초 정도. 조금 천천히 뛰면 km당 6분 30초의 속력이 나왔다. 남편은 좀 더 빨리 뛰어서 5분대로 끊어보라고 했지만 그렇게 해 보니 막판에 숨이 너무 차서 힘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목에서 피맛이 났달까. 아직은 내 폐활량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은 듯했다.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뛰는 게 최선이겠지.


남편이랑 같이 뛰기도 하고 혼자 뛰기도 했는데, 남편이 본인의 SNS에 러닝하는 사진을 몇 번 올렸더니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 분이 연락이 왔다. 온라인으로 가상 러닝을 같이 해볼 생각이 없냐고 말이다. 'The Conqueror'라는 외국 앱이 있는데, 실제로 달리거나 걷거나 러닝머신을 하는 등 운동한 기록을 그 앱에 연동되게 해서 온라인으로 세계 각국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정복(?)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그분이 모은 여러 멤버들이 있었고, 그분들과 같이 일주일에 대략 몇 km 정도를 뛰어서 기간 내에 전체 코스를 완주하면 되는 거였다. 


앱을 깔고 들어가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하여 아이슬란드의 링로드, 중국의 만리장성, 미국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에베레스트 산, 킬리만자로 산, 그랜드캐년 등의 루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 모임 참여를 오케이하면 조금은 느슨하고 자발적이던 내 러닝 일상에 약간의 강제성이 부여되는 셈이었다. 남편이랑 조금 고민을 하다가 함께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또한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도전해보는 일이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병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컸다.


멤버들과 함께 하는 첫 루트는 아이슬란드의 링로드 1,332km. 북유럽으로 가 보자!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의 러닝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