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이 기대하는 것보다
느리게 자란다

마지막 이야기 | 반갑다, 서른

by 글쓰는 김민정

서른번 째 생일을 맞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진짜 서른이 됐다.

오늘 나는 어제 입은 옷을 입고, 어제 신은 신발을 신고, 어제 만난 사람들을 만났다.

똑같이 굴러간 하루인데 어쩐지 달라야만 할 것 같았던 이유는 그날만큼은 내 이름이 ‘서른’이었기 때문이랄까. 생일 축하해,라는 상투적 인사는 걷히고 달걀 한 판이로구나,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나는 스물아홉 내내 서른을 걱정했다.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불안했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철없는 행동처럼 여겨질까 봐 두려웠다. 내게 서른은, ‘준비 다 됐어. 그러니 이제 와도 돼.’ 하면 오는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준비 덜 된 스물아홉 나는 벌거벗겨진 채 거리를 헤매거나 대사를 외우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르는 꿈을 많이도 꿨다. 그런 날이면 소화하지 못한 마음의 짐을 토해내듯 글을 썼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부대꼈던 것들이 나풀거리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썩 괜찮은 위로를 할 줄도 알기에 내가 조금 단단해졌구나 깨달았다. 어리고 여렸던 나의 글들은 그렇게 어리고 여렸던 내 마음을 차츰 위로해주었다.


나와 글이 무거움을 벗기 시작할 때부터 줄곧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라디오리포터 시절, 인터뷰이로 만났던 한 할머니. 나는 시정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인서트로 따고 있었고, 그 할머니는 ‘시민들’ 중 한 분이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으레 하듯 성함과 연세를 여쭈었는데 할머니는 본인을 육십이라고 소개했다. 우와 정말 동안이시다,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거드시길. "에고 형님 너무 속이는 거 아니가" 하시는 거다. 바로 그때 할머니의 말이 걸작이었다.

“몰라, 나는 예순 이후로 안 셌다.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는, 내 나이 몰라. 그게 뭐가 중요하노. 그냥 죽는 날까지 이래 재밌게 살면 됐제.”


서른의 온갖 잡념을 쓰면서 서른이란 단어를 생략할 순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내 서른 타령이 지겹게 느껴졌다. 너무 서른, 서른 하는 거 아니냐고. 서른이 뭔데! 그게 뭔데! 이런 삐딱한 날이면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아니, 할머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으므로 정확하게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국 나이란 건 제도를 제도답게 하려고 만든 일종의 약속 같은 건데. 그러니까 초등학교는 여덟 살에 입학하고요, 마흔 넘으면 2년에 한 번 하던 건강검진을 매년 하세요,처럼 수억 명이 수억 개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의사소통을 더 쉽게, 더 절약해서 할 수 있는 장치랄까. 서른이 됐는데 달라진 게 없다고 조바심낼 필요도, 술을 풀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 마흔과 같이 소위 꺾이는 나이에 우울을 겪는 건 나이를 그저 약속된 숫자로 보기보다 의미를 부여해서 보기 때문일 텐데, 그 의미라는 게 대개 시작보다는 완성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내가 서른 혹은 마흔이 되면 이걸 해 볼 테야’가 아니라 ‘그 나이가 되면 이렇게 되어 있을 거야’ 같은. 불량식품이 입에 달듯 이룬 것에 대한 감사보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가슴에 콕 박히는 것 또한 두말할 나위 없으며.


서른에는 내 일을 주름잡고, 깨 볶으며 토끼 같은 새끼들 키우고 있을 줄 알았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좀처럼 그럴 것 같지가 않아 답답했다. 갑갑하고, 깜깜하다고 적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세상이 정한 나이에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내 인생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정규 속도가 있지만 모든 차가 같은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빠르기도, 느리기도, 얼마쯤은 휴게소에서 쉬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목적지에 안착한다. 자기 속도를 유지하는 건 안전운전의 최선이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내 삶의 핸들이 내 손에 쥐어있다면, 나만의 타이밍으로 사는 게 삶의 최선일 터. 나이에 관한 일정한 기준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건 사회가 구실하기 위함이지, 내가 구실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런 일들은 이 나이에 하면 좋아요,면 몰라도 이 나이에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해요,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모두가 따를 이유는 없다. 세상이 기대하는 것보다 느리게 자랄지라도, 자라고 있다는 자체가 아름다운 거니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서른이지만, 그래서 어른스럽지 않아도 되고 아이처럼 허락 구할 일도 없으니까. 나만의 삶을 나만의 타이밍으로 살기에 딱 좋은 드라이빙 타임! 그래서……

반갑다,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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